역사야말로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보고(寶庫).우리 역사에서 세계제국 몽골에 저항한 고려의 항쟁은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추면 전혀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고려에 시집온 칭기즈칸의 딸들'(이한수 지음,김영사)은 정략결혼으로 고려에 온 원나라 공주들의 '거울'로 당시 격동의 동아시아사를 다시 비춘 책이다.

고려 말 '충(忠)'자 돌림 왕들의 운명은 몽골 여인 8명의 치마폭에 따라 출렁거렸다.

고려의 정치적 독립성은 거의 없는 상태였고 왕의 교체도 원나라의 입맛대로 이뤄졌다.

그 질곡의 한복판에 있었던 그녀들을 렌즈 삼아 세계제국 원과 고려의 관계를 읽으면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얼굴의 역사가 보인다.

아버지와 남편의 정략적 협약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여인들.충렬왕보다 더 나랏일을 근심했던 홀도로게리미실 공주,충선왕의 바람기 때문에 평생 속앓이를 했던 보탑실련 공주,이국 땅에서 역사의 격랑에 밀려 맞아죽은 충숙왕비 역련진팔라,왕이 유배 길에 죽고 여덟살짜리 아들이 즉위하자 실권을 쥐고 휘두른 충혜왕비 역련진반,공민왕의 진정한 사랑을 받았지만 고려의 몰락을 초래한 보탑실리….

세계를 정복한 몽골이 유독 고려에만 공주들을 시집보낸 것은 항몽전쟁에서 보여준 고려인의 투지 때문이었다지만,'몽골출신 왕비'라는 이름으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여인들의 삶에서 굴곡진 역사의 옹이를 재발견하는 작업도 드라마틱하다.

저자는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196쪽,99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