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인도시장을 지켜봤지만 요즘처럼 위기의식이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일본업체들은 '인도 총공격'을 선언했고,중국업체들은 야금야금 중저가 시장을 갉아먹고 있으니….지금 잘 나간다고 '이지 고잉(easy-going)'했다간 시장을 다 잃을지도 몰라요."(김광로 LG전자 인도법인 사장)

인도의 전자 및 자동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LG전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한국기업 3인방'의 현지 수장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전력을 집중하느라 '11억 인도시장'을 한국에 내준 일본 메이커들이 반격에 나선데다 중국업체들마저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인도시장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어서다.

23일 인도 뭄바이에서 만난 한국 3대 기업 대표들은 "한국 기업이 인도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지난 몇년과 앞으로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를 것"이라며 "방심했다간 향후 중국에 이은 최대 시장으로 성장할 인도 시장의 주도권을 일본 및 중국업체에 빼앗길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항상 불안한 마음입니다.

이제 막 인도 시장에서 자리을 잡았는데 굵직한 경쟁자들이 몰려드니 그럴 수밖에요.

지금은 한국이 월등하지만 몇년 뒤엔 프리미엄 가전시장을 놓고 일본업체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될 겁니다."(오석하 삼성전자 인도법인장)

"LG와 삼성을 잡아라"

현재 인도 가전시장은 한국 전자업체들의 텃밭이다.

LG전자는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 주요 품목에서 30% 안팎의 점유율로 부동의 1위자리를 지키고 있으며,삼성전자는 20% 수준의 점유율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일본 메이커들의 실적은 아직 미미한 수준.소니가 컬러TV 부문에서 10.3%의 점유율로 LG 삼성에 이어 3위에 오른게 눈에 띄는 정도다.

윤효춘 KOTRA 뭄바이 무역관장은 "일본은 1990년대 장기침체의 여파로 회사의 역량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집중하면서 인도를 소홀히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일본 경제가 부활하면서 일본 전자업체들이 본격적인 '인도 러시'에 나섰다는 점이다.

한때 인도를 포기하고 떠났던 산요는 최근 1억달러를 투입,합작법인 형태로 인도사업을 재개했고,후지쓰는 최근 공장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파나소닉은 기존 합작법인에서 단독법인으로 바꾼 뒤 대규모 투자를 통해 LG 삼성에 도전장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업체들은 중저가 인도 시장에 도전장을 낸 상태.인도는 아직 TV와 냉장고 보급률이 10~20% 수준이기 때문에 향후 중저가 시장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가전업계의 전망이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海爾)과 종합 가전·통신업체인 TCL이 잇따라 인도에 공장을 세운 것도 이런 점을 노린 것이다.

김광로 LG전자 인도법인 사장은 "중국제품 가격이 LG보다 15%가량 저렴한 만큼 일정부분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춘추전국시대 접어든 인도 차(車)시장

"시장점유율이 미미한 혼다는 지난 8월에 '시빅'을 들여와 단번에 준중형 시장 1위에 올랐어요.

내년부터 GM이 인도 최고 인기모델인 현대차 아토즈의 라이벌인 마티즈를 투입하고,도요타는 2008년부터 소형세단 '야리스'를 선보입니다.

힘겨운 싸움이 될 거예요."(임흥수 현대차 인도법인장)

인도 자동차 시장의 경쟁 양상은 전자업계보다 훨씬 뜨겁다.

"중국보다 더 중요한 시장이 될 것"(다케오 후쿠이 혼다 대표이사)이란 장밋빛 전망 때문에 최근 몇년 새 글로벌 메이커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 100만대 규모인 인도 자동차 시장은 2010년에는 200만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인도 자동차 시장의 최강자는 일본 스즈키와 합작한 현지업체인 마루티.시장 점유율이 무려 50%에 이른다.

그 뒤를 현대차와 현지업체인 타타모터스가 17~18%대의 점유율로 쫓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메이커들이 최근 잇달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혼다는 2016년까지 6억5000만달러 투자계획을 밝혔고,닛산은 인도에 공장 설립을 추진중이다.

'세계 최강' 도요타는 2015년까지 인도시장 점유율을 15%까지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기업들의 인도 공세가 본격화되자 LG전자 삼성전자 현대차는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일단 LG전자와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전략'을 한층 강화해 수성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내년 말 완공되는 연산 30만대 규모의 제2공장에서 생산될 신형 아토즈를 앞세워 마루티와의 격차를 줄이고,글로벌 메이커들의 도전을 뿌리친다는 구상이다.

뭄바이(인도)=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