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리더십이 화두로 떠오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최근의 관심은 '어떤 리더'인가로 모아지는 듯하다. 이에 올해 초 타임지는 '민감한(sensitive) 보스' 곧 감성적 리더의 시대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자신있게 예언(豫言)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조직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感知)되고 있는 듯하다. 과거 직장 상사에게 요구되었던 바 고전적 자질로서는 탁월한 업무 추진력,솔선수범하는 책임감,유연한 위기관리 및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 등을 빼놓을 수 없겠지만,요즘의 추세는 부하 직원의 생일 혹은 결혼기념일을 기억해주는 사려 깊은 상사,직원 자녀의 대학입학을 축하해주고 부모의 건강을 염려해주는 온정(溫情) 넘치는 상사,직원 개개인의 말 못할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따스한 상사가 환영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부하 직원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보스를 기대하게 된 건 최근 조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신세대 및 여풍당당(女風堂堂)의 주역인 여성들 성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들 신세대 및 여성들은 말로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면서 정작 가족을 위해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지 않는 구세대,투철한 '일 우선 이데올로기'에 따라 가족의 요구가 아무리 절실하다 해도 직장 일이 0순위인 구세대,일주일에 적어도 3회 이상은 업무와 무관하게 회식을 생활화하고 있는 구세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런 예고 없이 "오늘 회식이나 하지"하고 부추기는 상사,"어떻게 나온 집인데"라며 귀가(歸家)공포증을 암암리에 드러내는 상사,부인 앞에선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밖에 나와서만 큰소리치는 상사를 오늘의 신세대 및 여성들은 부정적 준거집단으로 삼고 있다.

대신 이들은 가장(家長)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인정한 상태에서 맞벌이 부부를 규범화하고 있는 만큼,어떻게 하면 가족의 요구와 직장의 책임 사이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취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다. 같은 맥락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남편 멋진 아빠가 될 수 있을까를 숙고(熟考)하기도 하고,부부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를 꿈꾸기도 한다. 이들에게 감성적 리더가 어필하고 있음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게다.

감성적 리더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건 IQ(지능) 못지않게 EQ(감성)도 중요하고 SQ(사회성)도 중요하다는 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대니얼 골맨의 저서 '감성지수' 첫머리엔 흥미로운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주인공은 유치원에 다니는 6살짜리 여자 어린아이. 이 꼬마에겐 남다른 능력이 있었으니,유치원 선생님들이 짝짓기를 해주면 예외 없이 다투고 토라지는 녀석들이 생기곤 했으나,이 꼬마가 짝을 맞춰주면 한 녀석도 빠짐없이 만족해했고 내내 사이좋게 놀았다는 것이다.

골맨은 6살 여자 어린이가 보여준바,친구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민감함,누가 누구와 잘 어울릴 수 있는지 간파할 수 있는 세심함에 주목하면서,이는 감성 지수가 유달리 발달한 결과로서 미래에는 다양한 감성을 풍부히 개발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關鍵)이 되리라 전망했다.

단 감성적 리더와 관련해서는 한 가지 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감성적 리더의 경우 중요한 결정 앞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보다 '인기영합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조직 수준에 따라 요구되는 리더의 자질이 다양한 상황에서,리더로서의 진정한 역량과 주위의 인기도(度)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긴 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요구되는 바는 감성적 리더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거품과 실체 사이의 괴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더불어 올바른 판단과 인기에 치중하는 제스처 사이의 차이를 선별할 수 있는 혜안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가 희박한 리더가 상대로부터 존중을 받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는 가능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