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1996년 내과 의사로 첫발을 내디딘 로버트 글래스맨.그는 혈액종양 전문의로 명성을 쌓으면서 한때는 '노벨 의학상'을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동문 모임에서 자신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월가(뉴욕의 금융 중심지)에서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결국 스스로도 '월가행'을 택했다.

일순간에 그의 연봉은 여섯자리(10만달러대)에서 일곱자리(100만달러대)로 뛰었다.

뉴욕타임스는 글래스맨처럼 백만장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월가로 진출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27일 보도했다.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월가와 전문직 종사자들 간의 임금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로 발길을 돌리는 전문직은 주로 의사 변호사 교수와 연구직 분야 종사자다.

글래스맨의 경우 2001년 메릴린치로 자리를 옮겨 의약관련 분야에 대한 컨설팅과 분석을 맡고 있다.

신생기업들이 만들고 있는 의약품을 평가하는 것도 그의 주업무다.

신약 평가는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나 기업공개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의 보고서는 언제나 월가에서 주목을 받는다.

그는 연봉을 밝히기를 꺼려하지만 최소 100만달러(약 9억3000만원)를 받을 것이란 게 월가의 중론이다.

의사 시절 연봉의 4배 정도에 달하는 액수다.

의대생들의 경우 졸업 후 월가로 직행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월가로 자리를 옮긴 변호사들은 주로 기업 소송관련에 대한 자문을 맡고 교수나 연구직 종사자들은 각자의 전문분야 업종에 대한 분석 등을 담당한다.

뉴욕타임스는 학계에서도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교수직이나 연구직보다는 기업체 진출을 선호하고 있으며 제조업이나 소비재 분야 전문가의 길을 택하는 경영대학원 출신자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직의 월가 진출이 늘어나면서 관련 분야에서 인력 부족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메디컬그룹매니지먼트어소시에이션은 "가정의학분야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대가(보수)가 클수록 그것을 가지려는 노력이 치열하다"고 지적했다.

월가가 상대적으로 월등히 많은 임금을 미끼로 실용분야 인력을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월가로 진출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동료 전문가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면서 전문직 종사자로서의 상실감을 자선을 통해 위로받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글래스맨은 모교를 비롯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자선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 이민자 출신으로 교수에서 월가의 사모펀드로 자리를 옮긴 존 문도 대학에 많은 기부금을 내는 것은 물론 다른 자선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자선으로 상실감을 채워보려는 이들에겐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추구하는 모델이다.

이 신문은 전문직과 월가의 임금 격차가 확대될수록 전문직의 월가 진출은 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