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결말은 통쾌하다.

회사에 적응하고 상사에게 잘보이려 사생활을 포기하고 온갖 궂은 일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능력을 인정받고 사표를 던지는 순간 관객의 속은 후련해진다.

깜짝 놀란 상사를 뒤로 한 채 표표히 떠난 주인공이 새 직장을 얻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회사 또는 상사가 아쉬워할 때 보란 듯이 사표를 쓴 다음 훌훌 털고 나오는 건 어쩌면 모든 직장인의 소망일지 모른다.

'직장을 자주 옮기면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

성공하려면 한 우물을 파라'던 것도 옛말. 경우에 따라 적절히 옮겨다니는 쪽이 경력 관리에 유리해진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은 그러나 영화처럼 만만하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

영화에선 '악마같던' 상사가 자신을 떠난 부하직원을 위해 추천서를 써주고 덕분에 원하던 곳에 취직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이 생길지는 미지수다.

원작자 또한 회사를 박차고 나와 그 경험을 소설로 써 출세했다지만 일반인이 그렇게 될 가능성은 로또 당첨 확률 정도다.

물론 이직이나 전업으로 인생역전을 거두는 사람도 있다.

창업으로 성공하자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번듯한 직장에 있을 땐 뭘 하든 밀어줄 듯 굴지만 막상 나오면 언제 봤느냐는 듯 외면하는 게 세상 인심이다.

퇴직금 없애고 주저앉는데 2년 걸린다는 말도 있다.

경력 3~4년차 여성 상당수가 재충전을 한다며 사표를 내고 어학연수나 해외여행 등을 떠났다 온 뒤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충전으로 몸값을 올리자면 그 전에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일부 성공사례를 좇았다 대책없는 상태가 된다는 얘기다.

채용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8%가 사표를 써본 적이 있지만 실제 제출한 사람은 22.9%였다고 한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생계문제 등이 달려있어 꾹 참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표를 내는 것도 용기겠지만 참고 자신을 갈고 닦는 것도 용기다.

잘못 던지면 직장 사표(辭表)가 아니라 인생 사표(死表)가 될 수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