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은 물리학같은 '과학(science)'으로 대접받고 싶어했다. 수학이 경제학에 유입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수학으로 현실경제를 설명해 보려고 한 것까진 좋았는데 막상 모델을 만들어 예측을 해보니 성적은 별로였다. 현실을 너무 단순화했거나 무리한 가정들을 도입한 때문이란 분석이 있는가 하면 전혀 예상치 못한 외생변수 탓이란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경우를 보면 꼭 그런 요인들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경제전망 시즌이다. 내년 경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전망은 다음달에 나오겠지만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올해보다 더 어려운 한해가 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성장률을 4.0%에서 4% 초반 정도로 전망하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되돌아보면 참여정부 경제전망은 출발부터 꼬였던 게 아닌가 싶다. 당초 연평균 7% 성장률, 매년 50만개 이상 일자리 창출을 공약했다.

원래 공약은 정치적 의지가 앞서 있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참여정부는 매년 최소한 5% 성장률 전망을 고수했다. 결과는 2003년 3.1%, 2004년 4.7%, 2005년 4.0%였다. 어쩌면 올해 유일하게 5%에 턱걸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올해 내걸었던 35만개 일자리 달성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

내년은 어떨까. 처음엔 곧 죽어도 5% 성장은 가능하다고 보더니 올 후반에 들어서자 4.6%로 낮췄다. 다음달 발표땐 아마 하향조정될 거란 얘기가 많다. 내년 성장률이 4% 초반이면 참여정부 5년간 성장률 평균도 4% 초반에 그치게 된다. 2003~2006년 세계경제 성장률 평균이 4.9% 정도이고 보면 내년에 세계경제가 좀 둔화되더라도 참여정부는 5년간 세계경제 성장률 평균에 못 미친 성적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망과 결과가 왜 이렇게 다르냐고 물으면 정책당국자들이 하는 얘기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래도 잠재성장률 수준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면 물가상승 등 부작용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지만 실은 무책임한 말이다. 성장률이 상승하는 잠재성장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정부의 성장의지를 보여주려고 일부러 높게 잡았다는 것. 그러나 이것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그런 의지에 걸맞은 정책들이 펼쳐졌는가를 따져보면 말이다.

남은 하나는 대외변수는 워낙 전망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밖의 변수가 지금의 침체를 초래한 건 아니다. 오히려 소비 투자 등 대내 문제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안에서 재미없는 일들이 자꾸 쌓이면 때때로 산사태와 같은 붕괴나 침체가 올 수 있다. 정말 무서운 건 이거다. 미국경제의 경착륙 여부, 북핵 문제의 전개 시나리오 등을 얘기하지만 대내 혼란에서 오는 불확실성이 더 걱정되는 이유다.

단기 전망에서 재미 못본 참여정부가 '장기'에 집착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장기는 자칫 현재의 일을 오도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솔직히 장기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종교집단이면 몰라도 지금 사람들이 모두 죽고 난 다음의 장기가 얼마나 의미를 가질까. 게다가 단기전망이 이 모양인데 장기전망이 신뢰를 얻을 리 없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