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8월 세계 조선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란 국영석유공사(NIOC)가 발주한 30만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5척에 대한 입찰 경쟁에서 중국 다롄(大連) 신조선소가 한국 일본 등 전통의 강자를 물리치고 수주를 따낸 것이다.

중국은 당시 자국에서 발주한 17만t급의 중형 원유운반선을 건조한 경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 VLCC를 대량 수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중국이 이란의 국가신용도위험(컨트리리스크)을 무릅쓰고 과감한 장기 외상 금융조건을 제시한 것이 수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중국은 이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 조선소가 독점하고 있던 VLCC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중국이 조선강국 한국을 맹렬히 뒤쫓고 있다. 일본도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수주전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중국은 올해 세계 조선 수주시장(수주량 기준)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고 한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중국 정부는 조선산업에 대한 장기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2015년에 선박 건조량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오른다는 청사진을 세워놓고 대규모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상하이 광저우 산둥성 등의 조선소 확장 계획이 완료되면 선박건조 능력도 2007년 세계 3위로 뛰어 오르는 데 이어 2010년에는 한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를 전망이다.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한 가격쟁쟁력과 풍부한 내수 수요가 중국 조선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선박시장에서 국내 조선소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중국이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높은 기술 수준과 생산성이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선박에 대한 경쟁력 있는 선박금융 제공이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용안 수출입은행 이사는 "최근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고 있는 고가의 FPSO(부유식 원유생산설비),드릴십(원유.가스 시추설비를 장착한 선박),LNG선 등 해양 석유,가스 시추 및 운송설비 수주를 위한 선박금융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경쟁력 있는 금융제공을 통해 국내 조선업계의 미래성장 동력 개발을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 조선소의 활성화도 과제다. 현재 한국에는 세계 10위권 내의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소 7개사 외에 70여개에 달하는 중소 조선소가 있다. 중소조선소는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선박 기자재 산업의 수요 기반인 동시에 대형조선소에 선박블록(선체조각)을 제작해 납품하는 연관기업으로 한국 조선경쟁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 조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해 조선경기와 원가상승 등의 환경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최 이사는 "신용도가 양호한 중소 조선소에 대한 보증의 신용취급비율을 높이는 등 중소 조선소들이 수출선 수주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며 "이를 통해 국내 조선업계의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고 대형 조선소와 중소 조선소 간 균형있는 발전을 통해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