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萬雨 < 고려대 교수·경제학 >

한국은행이 시중 부동자금의 누적된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16년 만에 지급준비율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심정을 지울 수 없지만,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하는 바이다.

6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체험해 온 경제현상 중의 으뜸이 부동산 가격 앙등 및 대증요법(對症療法)적 정부의 대응과 어김없는 정책의 시행착오를 들 수 있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인 2002년에만 해도 부동산 경기를 진정시키고 경제거품을 제거하기 위해 3,5,8,10월 등 4차례에 걸친 투기억제책이 마련되기도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20여 차례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종합대책으로 불리는 8·31대책이 제시됐으나,이 또한 약효가 없자 3·30 보완책에 이어 11·15 긴급처방이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자고 깨면 신부동산 대책이 발표된다는 비아냥이 터져 나올 정도로 빈번한 투기대책이 제시됐지만 대다수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과잉유동성을 해소하는 방안이나 부동(浮動)자금을 유인하는 대안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은행의 지준율 인상은 일부 국가에서 용도폐기한 반(反)시장적 조치로 그 부작용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과잉 유동성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으로 긍정적 효과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향후 부동자금을 유인할 수 있는 각종 후속대책이 함께 한다면 경제 거품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형태가 어떠하든,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이든 경제에 발생한 거품은 그대로 방치(放置)하면 점점 커지게 마련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거품이 최대로 커지기 전에 미리 터뜨려 주는 기능을 절대로 갖고 있지 않다. 여기에 정책당국의 진정한 역할이 존재하며 정부는 경제거품의 사전차단이란 시각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책을 마련하고 일관성 있게 그 정책을 시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음을 이제까지 경험한 시행착오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경제정책이나 개발정책의 시행에서 항시 이들 정책의 부작용으로 경제거품 재현 여부를 사전 점검하는 치밀한 자세가 요구된다. 참여정부의 지역균형개발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각종 정책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거품의 사전차단이란 관점에서 정책의 유효성 검증(檢證)을 소홀히 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미국경제는 91년 이후 10여년간 최대의 장기호황을 누렸다. 이는 80년,82년,90년 세 번의 불황을 경험하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조기 '거품'제거 노력이 성공적으로 달성된 결과로 대다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앙집권화한 막강한 힘을 가지고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누리고 있는 FRB의 성공적인 조타수(操舵手) 역할이 장기호황의 견인차가 됐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미국경제의 장래에 대해서 낙관적이다. FRB를 신뢰하는 다수 경제학자들은 만약 거품이 싹트기 시작하면 더 커지기 전에 중앙은행이 터뜨려 줄 것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의 지준율 인상을 계기로 한국은행도 미국 FRB의 조타수 역할을 해주기를 다수 국민들은 기대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일본의 경우 80년대 중반 방만한 금융 및 재정정책을 장기간 지속한 결과 경제 전반에 거품이 심화 확산됐다. 그 단적인 예로 86~90년 5년간 지가는 3배로 상승했다. 거품현상이 심화하기 이전,조기에 거품을 터뜨려 주는 데 소홀해 경기침체의 근원적(根源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장기침체의 원인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장기간 안정적 성장은 이들 거품을 여하히 효과적으로 제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중소기업 경쟁력 약화,가계대출 부실화 등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정책이든 모든 경제 주체를 골고루 만족시킬 묘책(妙策)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