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는 길은 멀었다. '2006 인도 뭄바이 세계 일류 한국상품전(22∼25일)' 참관차 인천공항을 떠난 건 20일 오전 11시30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을 거쳐 뭄바이에 도착한 건 한국시간으로 다음날 새벽 1시10분. 입국 수속을 마칠 때까지 꼬박 14시간 이상 걸렸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길은 좁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가로등은 물론 신호등도 없는 캄캄한 길을 달리는 동안 "혼자 오긴 힘들겠구나" 싶었다.

인도의 국토는 한반도의 15배,인구는 11억명에 달한다.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 조만간 중국의 13억 인구를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마당이다. 1인당 GDP는 미화 543달러지만 지난해 실질 GDP 성장률은 8.4%. 친디아란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닌 셈이다. 뭄바이(옛 봄베이)는 이런 인도 GDP의 30%가 창출된다는 경제도시다. 세계 각국의 기업과 투자자가 얼마나 모여드는지 지난 1∼2년 동안 집값이 급등,외국인 선호지역은 평당 2000만∼3000만원씩 한다는 정도다.

그런 뭄바이지만 도시 인프라는 형편 없다. 겨울인데도 섭씨 30도가 넘는데 전기가 부족해 유명박물관조차 냉방이 안되고,도로 사정이 나쁜데다 신호등 없는 거리에 자동차와 오토바이 릭샤(인도 특유의 탈 것)가 뒤범벅돼 위험한 건 물론 가까운 지점에 가는 데도 몇십 분씩 걸리기 일쑤였다. 곳곳에 아이들까지 동반한 노숙자와 걸인 투성이여서 눈 둘 곳을 찾기 힘들었다. 쇠고기가 없는데다 다른 먹거리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사정이 이러니 세계 어디에나 거의 다 있는 한국 식당과 노래방도 없었다. 그런데도 시내 곳곳엔 LG전자삼성전자 광고판이 줄지어 있고 거리엔 현대차가 수두룩했다. 일본을 비롯한 다른 나라가 발을 딛기 전 일찌감치 진출한 덕이라고 했다. 한여름엔 섭씨 40도가 넘고,뭄바이만 벗어나면 고속도로도 깜깜하고,힌두교와 이슬람교 시크교 신자가 뒤섞여 매사 조심해야 하는 곳에 '수출'이라는 목표 하나로 무작정 달려가 시장을 선점했다는 얘기다.

'뭄바이 한국상품전'은 그 연장선상에서 마련된 행사였다. 무엇 하나 빨리 이뤄지기 힘든 인도에서 처음 열리는 이 전시회를 위해 코트라 직원을 비롯한 담당자들은 몇날 며칠 밤을 꼬박 새우고 현대차 삼성 LG와 중소기업 등 118개사 임직원들은 눈 붙일 새 없는 일정을 소화해가며 한 명의 바이어라도 더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본과 중국 등 각국이 치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기존 시장을 지키고 신규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이었다.

"안전한 곳에 먹이는 없다. 어디든 사정이 좋아지면 돈 벌 기회는 줄어든다"며 열악한 환경을 오히려 호기로 여긴다는 이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 경쟁의 치열함에 아랑곳없이 규제에 열 올리는 관료,툭하면 민생문제 제쳐두고 파당 싸움에 멱살잡이까지 하는 국회의원,정당한 평가조차 거부하겠다며 수업을 마다하는 교사,대다수 직장인 평균보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붉은 띠를 매고 농성장에서 날을 새우는 일부 노조원 모두 세계 오지의 수출전선에 투입해보면 어떨까'하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날씨에 양복 입고 넥타이 맨채 바이어 눈치 살피느라 전전긍긍하다 보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희망사항이려나. 답답하고 안타깝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