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던 외교통상부 차관인사가 30일 조중표 외교안보연구원장과 김호영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의 1·2차관 내정으로 결론이 났다. 김 원장은 외교부 차관으로는 전례없는 행자부 출신(행시 21회)이다. 청와대가 외교부에 혁신 문화를 이식하기 위해 수술 집도의를 보낸다는 게 관가 호사가들의 분석이다. 외교부가 고위직 인선을 타부처에 개방하는 '혁신'을 이행하지 않아 청와대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이유는 청와대와 외교부가 지난 2년간 인사 개방 문제로 미묘한 신경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1~3급 고위공무원 임용을 개방형으로 운용하기로 한 데 대해 외교부는 본부 국장직의 20%를 개방하는 내용의 외무공무원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답보 상태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혁신 의지가 부족하다며 외교부 지도부를 탓한다. 외교부는 의원들이 도와주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하소연이다.

외교부에 개방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명문고와 국립대가 요직을 장악하는 관례가 계속돼 왔다는 점에서 외교부는 엘리티시즘이라는 비난 앞에서 항상 떳떳하지 못하다. 혁신을 위해서라면 김 원장이 발탁된 것도 나름 일리있는 인선이다. 김 원장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6차 정부혁신포럼을 열 때 준비단장을 지냈고 공공행정 개혁을 위한 기구인 유엔거버넌스센터를 유치하는 일에 앞장서 지난해 9월 원장으로 발탁됐다. 이른바 '정부 혁신의 대표선수'다.

하지만 문제는 시점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그에 따른 유엔의 제재,6자회담 재개 등 한반도 문제를 놓고 우리 영토 밖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반면 정작 우리 외교부는 청와대가 차관 둘을 문책성으로 교체할 것이라는 소문에다 정부와 야당간 실력 다툼으로 장관 임명부터 지연되면서 지난 한달 간 뒤숭숭했다. 12월 초면 공관장인사까지 마무리됐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본부 외교관뿐 아니라 인사 대상 외국주재 대사들도 언제 짐을 싸야 할지 몰라 일손을 잡지 못했다. 일부 외교관들 입에선 이런 볼멘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혁신도 좋지만 협상은 언제 하란 말이냐"고.

정지영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