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1)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 "부자되고 싶어서 부자회사 들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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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은 오늘부터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꿈과 인생을 담은 인터뷰 시리즈 'CEO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를 주1회 연재합니다.
한경 데스크와 취재기자들,그리고 머리 희끗한 CEO들이 정겨운 살내음 나는 선술집을 찾아 나누는 대화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기대합니다.
첫 회는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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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우리네 살이의 정보 길라잡이는 노변정담(爐邊情談:화롯가의 정겨운 이야기)이었다.
숯을 넣은 질그릇 화로에서 손이 델세라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꺼내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지 않았던가.
장작 화톳불을 호호 불어가며 구워먹던 돼지고기 맛은 또 어땠던가.
험한 길과 재를 꾸역꾸역 넘어오던 그 시절의 정보가,이제 세월이 흘러 모든 이들에게 빛의 속도로 다가오는 시대가 왔다.
첨단과 진보를 운위하는 세상이지만 한켠에선 낯선 이웃들의 이질적인 삶들이 가슴 따뜻한 연민을 밀어내는 세상이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이번 겨울에 조그만 술집을 빌려 옛 화톳불을 밝히고자 한다.
지난 수십년을 한 길로 정진한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모시고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릎을 치고 경청해야 할 삶의 지혜와 함께 환희와 탄식이 교차했던 수많은 사연들을 전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밤 깊은 선술집에서 건져 올린 삶의 정수들이 젊은이들에게는 꿈과 용기를 주는 귀한 숯이 되고,부끄럽지 않게 현대사를 살아온 중장년층에게는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 마포 대포집에서 한경 기자들과 3시간30분 솔직토크 ]
이기태 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4일 마포의 조그마한 연탄구이집에서 진행됐다.
두툼한 돼지 목살과 약간의 빈대떡,묵은 김치 몇 조각을 놓고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밤 11시30분에야 끝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사장은 힘겹게 서너 잔의 소줏잔을 비웠지만 격의 없이 술자리에 어울렸으며 기자들의 잇단 질문을 특유의 화법으로 받아쳤다.
대화 도중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얘기는 딱 한 번 나왔다.
"이건희 회장님에게 전도해 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나 종교의 자유가 있잖아요"라고 에둘러 대답한 대목이었다.
▲ 삼성전자 사장으로 일한 게 몇 년이나 됐죠?(첫 질문 치고는 약간 썰렁했다)
"한 2년 됐나?(그는 이 말을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었다.실제로는 6년이다.긴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는 뜻일까)
▲ 어렸을 적 꿈은 뭐였어요?(단도직입적으로)
"전업사 사장 되는 거였죠.변압기 모터 철근까지 갖다 놓고 팔았거든.그거 우리 동네에선 대단했어요.
나는 언제 전업사 해 보나 했어요.
전업사 해 보고 싶어서 전기공학과 갔는지도 모르지요.
ROTC 시절에 전방 가서 받은 월급으로 오토바이 사고 전업사 차려 볼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방으로 못 가고 육군 통신학교 교관이 된 거지."
▲ 통신학교 교관이 되면서 통신과 인연을 맺게 된 거군요.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연이었죠.나는 빽도 없고 그래서 전방에 가겠다 싶었는데 1군 차출자 명단 부를 때 보니까 이름이 빠진 거야.2군,3군 부를 때도 안 나왔어요.
사령부 부를 때도 안 나오고….마지막으로 딱 10명 남았는데 교관이 "니들은 여기 남아야 한다" 그래요.
"일 벌어졌네,나 전방 가야 하는데…" 속으로 그랬지만 별 수 없었지 뭐.그래서 통신학교 교관을 한 거예요.
무선 학부에서."
▲ 통신 기술은 학교보다 군에서 더 많이 배웠겠군요.
"그런 셈이죠.그 당시에 제일 좋은 최첨단 장비를 내가 맡게 됐어요.
안테나만 뽑으면 전 세계 다 통하는 SSB(싱글사이드밴드) 장비.그게 1억달러 짜리였는데,그때 미국이 군사비로 원조하는 게 10억달러 좀 넘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마어마하게 비쌌던 장비죠.그래서 '고장 나면 큰일난다'고 신신당부받았지.그 SSB 장비를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니깐 이 분야에선 회로만 보면 딱 아는 전문가가 됐죠."
▲ 전업사 차리는 게 꿈이라면서 삼성에 입사하셨어요?
"통신학교 교관이었는데 돈이 모였겠어요? 그래서 삼성전자에 취직했어요.
그건 내 선택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죠."
▲ 그런데 왜 하필 삼성이었죠?(좌중에 소주가 한 순배 돌았다)
"삼성이 제일 부자 회사여서 그랬죠 뭐.그땐 이병철 회장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자였어.부자가 되려면 부자가 하는 대로 하면 되겠다 싶어서 갔어요.
(그는 의외로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 또 제대 3~4개월 남겨놓고 계엄이 선포됐는데 대전에 파견 갔다가 돌아와서 보니까 삼성에서 ROTC 출신 뽑는다고 해서 덜컥 지원하게 됐죠."
▲ 그때 삼성 입사 시험도 지금처럼 어려웠나요?
"삼성에선 사람을 까다롭게 뽑지 않았어요.
다른 거 안 보고 논술을 봤거든.시험지 큰 거 넉 장 주고 제목 주고….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건 할 수 있지.외운 걸 쓰라고 하면 골치 아프거든.역사나 물리 화학 문제처럼 안 본 걸 쓰라고 하면 못 쓰잖아."
▲ 정답보다는 자기 생각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지.직선적(linear)인 사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1 더하기 1은 2다…이렇게.하지만 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사고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야 진화론에서도 살아 남잖아.1,2,3 다음엔 꼭 4가 온다… 그동안 이런 게 우리나라 교육이었지.하지만 실제론 뭐라도 올 수 있잖아요."
▲ 창조적 생각이란 게 말이 쉽지 제일 어려운 건데,어떻게 트레이닝합니까?
"(쓴 소주를 반 잔쯤 마신 뒤) 회사 들어가자마자 창조력이 생기지는 않죠.일단 문제의 본질을 아는 게 중요하고,원인 분석과 해법에 대한 여러 가지 경영 기법을 훈련해야 해요.
아무 생각 없이 누가 하는 거 따라 하고 짜깁기하는 건 안 되고.물론 기법엔 능통해도 적용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지요.
거기서 실력 차가 나오는 거예요.
돈 주고 MBA(경영학 석사) 따러 갈 필요 있나.
외국 대학 MBA란 거…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러 가는 거 아닌가요?"
▲ '삼성 고시'라는 삼성직무능력시험(SSAT)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우리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과장 때도 테스트를 해 봤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정답 쓰려고 하면 틀려요.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자기 의견을 써야 해요."
▲ 삼성이 강조하는 S급 인재란 뭔가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무척 고민 되는 눈치) S급이란 정의하기 참 힘들어요.
눈에 잘 안 띄고.그러니 S급 인재를 보는 눈을 먼저 가져야겠지.S급을 뽑은 사람이 S급이 되어야 하겠지요."
▲ 부하 직원 만족도는 얼마나 되세요?
"80점 정도.그래도 세계를 제패하려고 한다면 100점을 목표로 해야겠지요.
높이 뛰기할 때 한 번 보세요.
대구 챔피언을 하려면 1m30cm만 뛰어도 되죠.국내 챔피언은 150cm.하지만 세계 챔피언이 되려면 2m는 뛰어야 되고 혹독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죽었다 깨어나면서 모든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얘깁니다.
어설프게 해서 세계 챔피언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 부하 직원 중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은?
"내가 안 챙겨 봐도 다 해놓고 있는 사람,일부 지시만 해도 전체를 알아서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전체 부하들 중에 3~4%는 돼요.
사실 3%만 해도 많은 거예요.(얼굴이 밝아진다.정말 만족스러운 표정)
▲ 그동안 생활해 오면서 어떤 상사를 가장 좋아하셨죠?
"상사가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죠.하지만 그렇게 하나 하나 비교하다 보면 직장 생활이 어려워져요.
비교하면 고통이 따르니까.
가능하면 비교하거나 신경 쓰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됨됨이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은 오래 안 가더라고요.
길어 봐야 1년.좋은 사람들은 오래 있고….회사가 너무 잘 알아요."
▲ 부하 직원이 무능하다고 생각되면 어떡합니까?
"조직엔 새 물을 넣는 게 정상이지.하지만 실수와 실패는 구별해야 해요.
실수는 과정이고 실패는 결과지.실수가 실패는 아니잖아요.
물론 연속적으로 실수하면 바보지.나는 개인적으로 네 번까지 연속적으로 실수하는 것은 실패라고 보거든요.
회사에선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데 매번 실수하는 사람을 쓸 수는 없지요."
▲ 인간 관계도 그러신가요?
"정말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부하라면 끝까지 몰아붙여서는 안 되겠지.쓰러지려고 하면 잡아 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이테를 먹는 거야.나이테를 먹으면 더 단단해지죠.그러면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게 돼요.
이걸 관계 형성이라고 하죠.인간 관계에선 이게 참 중요한 거예요.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캐논이나 샤프 같은 회사들도 다시 평생 직장으로 돌아오잖아요.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는 부모 형제를 예로 들며 '일촌'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일촌이란 막말을 해도 진심을 이해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 인사 문제로 누구한테 스트레스 준 일도 있어요?
"그럴 수 있지.하지만 난 인사 평가를 한 번도 잘못해 본 적이 없어요.
그건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자 우리 이렇게 얘기만 할게 아니라 또 한 잔씩 듭시다.(건배)"
▲ 그래도 그동안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요즘 다른 사람들이 나와 누구를 비교하고 하는데(크게 웃는다).나는 그런 분들과 잘 협력하고 있어요.
난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게 내 의자다' 하면서 싸운 적이 없어요.
총괄 사장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그저 작은 선택과 선택의 결과치가 모여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 예기치 않은 선택의 결과들로 정보통신 총괄 사장이 된 거란 말씀이세요,아무런 야심이 없었는데도?(웃음)
"세상에 내가 원해서 되는 게 얼마나 됩니까.
물론 저도 한때 야망을 가졌을 때가 있었죠.아침마다 사장이 되자고 외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머리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겠죠.하지만 중요한 것은 갑자기 (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을 잘해서,또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됐다는 점이에요."
▲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은 어떻다고 보세요? 지장 덕장 용장 중에 하나 골라 보시죠.
"나는 별로 동의하는 거(스타일) 없어요."
▲ 본인의 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감이지.용기 있고 대담한 거… 거기에 덧붙인다면 뭐라고 할까… 실무적으로 갖춰져 있다는 점 정도라고 생각해요.
옛날엔 뭔가 결정할 때 많은 시간이 걸리고 두려움을 느꼈지만 지금은 빠르게 실패 없이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봐요."
▲ 스트레스받을 땐 어떻게 합니까?
"스트레스 안 받아요.
왜 받아? 결정을 다 했고 결과는 그에 따라 나오는 건데… "
▲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도 스트레스 안 받습니까?
"돈 찍어내는 인쇄기도 고장날 때가 있어요.
영업이익률은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지.내려오는 순간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모멘텀만 있으면 되죠.지금 얼마 버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미래 가치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예요."
(술 한 잔을 돌리다가 갑자기 지갑이 화제가 됐다)
▲ 사장님,지갑 좀 보여주세요.
이거 되게 오래된 지갑이네요?
"(당황하며) 큰일났네.창피해서 어떡하나.
15년쯤 된 거예요.
별거 안 들었어요.
카드 몇 개 하고 신분증 정도."
▲ 그러고 보니까 휴대폰도 좀 오래된 거 같은데요.
"이거 안 되는데.(실랑이) 이거 벤츠폰이에요."
▲ 아니 왜 이런 구모델을 들고 다니시는 겁니까?
"물론 다른 모델들도 있지요.
근데 벤츠폰 '야(얘)'가 유럽 3G서 어려웠을 때 날 구해 줬어요.
노키아하고 붙었을 때 '야'가 구해 줬단 말이에요.
그래서 '야'를 이용해서 할 일이 또 있어요.
(기특하다는 듯 계속 만지작거린다)"
▲ 집에선 몇 점짜리 가장이세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웃음)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봉사도 하고 그래요.
집사람 발도 주물러 주고,일요일에는 교회 가기 전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순대국밥도 같이 사먹고 그래요.
(그는 현재 큰아들과 함께 일본에 살고 있는 며느리 자랑이 대단했다.
일본으로 유학 간 아들을 24세에 결혼시켰는데,손자가 벌써 두 명이란다) 며느리가 집에 오면 손톱 발톱 깎아 주고 안마도 해 주고 그래요.
근데 미대 조소과 나와서 그런지 힘이 되게 세.그림도 쓱쓱 잘 그려요.
휴대폰 그려봐라 하면 쓱쓱."
▲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아들 둘,딸 하나 있어요."
▲ 요샌 자녀 수가 경제력을 측정하는 도구라던데.
"경제력? 애들이 많으면 경제력이 따르게 돼 있어.너무 잘 가르치려고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 일본 유학도 보냈잖습니까?
"아마 내가 안 보냈어도 지가 갔을 거야."
▲ 자식들은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세요? 삼성전자 입사하라고 하시겠어요?
"기본적으로 지가 하고 싶은 일 하라는 거지 뭐.밑바탕에는 노인이 무거운 짐 들고 간다 하면 들어 주는 심성이 있어야겠지만,삼성 맨이 되든 안 되든 그건 알아서 하라는 마음이에요."
▲ 사위가 이뻐요,며느리가 이뻐요?
"사위 구박하는 건 딸 구박하는 거고 며느리 구박하는 건 아들 구박하는 거고.가화만사성이 좋겠지요."
▲ 서울에 집은 사셨어요?
"얼마 전에 샀어요,잠원동에.(이 사장은 구미 공장과 서울을 오가면서 여러 해 동안 서울에서 전세를 살다가 2년여 전 잠원동에 집을 마련했다)
▲ 집 좋아요?
"아 그럼요.좋아요.언제 한 번 우리 집에 갈래요? 여기 오신 분들 다 앉을 자리 있어요."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뵙고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참석자들 모두 박수)
김현지 기자 nuk@hankyung.com
한경 데스크와 취재기자들,그리고 머리 희끗한 CEO들이 정겨운 살내음 나는 선술집을 찾아 나누는 대화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기대합니다.
첫 회는 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사장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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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우리네 살이의 정보 길라잡이는 노변정담(爐邊情談:화롯가의 정겨운 이야기)이었다.
숯을 넣은 질그릇 화로에서 손이 델세라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꺼내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지 않았던가.
장작 화톳불을 호호 불어가며 구워먹던 돼지고기 맛은 또 어땠던가.
험한 길과 재를 꾸역꾸역 넘어오던 그 시절의 정보가,이제 세월이 흘러 모든 이들에게 빛의 속도로 다가오는 시대가 왔다.
첨단과 진보를 운위하는 세상이지만 한켠에선 낯선 이웃들의 이질적인 삶들이 가슴 따뜻한 연민을 밀어내는 세상이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이번 겨울에 조그만 술집을 빌려 옛 화톳불을 밝히고자 한다.
지난 수십년을 한 길로 정진한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모시고 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릎을 치고 경청해야 할 삶의 지혜와 함께 환희와 탄식이 교차했던 수많은 사연들을 전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밤 깊은 선술집에서 건져 올린 삶의 정수들이 젊은이들에게는 꿈과 용기를 주는 귀한 숯이 되고,부끄럽지 않게 현대사를 살아온 중장년층에게는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 마포 대포집에서 한경 기자들과 3시간30분 솔직토크 ]
이기태 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4일 마포의 조그마한 연탄구이집에서 진행됐다.
두툼한 돼지 목살과 약간의 빈대떡,묵은 김치 몇 조각을 놓고 저녁 8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밤 11시30분에야 끝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사장은 힘겹게 서너 잔의 소줏잔을 비웠지만 격의 없이 술자리에 어울렸으며 기자들의 잇단 질문을 특유의 화법으로 받아쳤다.
대화 도중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한 얘기는 딱 한 번 나왔다.
"이건희 회장님에게 전도해 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누구나 종교의 자유가 있잖아요"라고 에둘러 대답한 대목이었다.
▲ 삼성전자 사장으로 일한 게 몇 년이나 됐죠?(첫 질문 치고는 약간 썰렁했다)
"한 2년 됐나?(그는 이 말을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었다.실제로는 6년이다.긴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는 뜻일까)
▲ 어렸을 적 꿈은 뭐였어요?(단도직입적으로)
"전업사 사장 되는 거였죠.변압기 모터 철근까지 갖다 놓고 팔았거든.그거 우리 동네에선 대단했어요.
나는 언제 전업사 해 보나 했어요.
전업사 해 보고 싶어서 전기공학과 갔는지도 모르지요.
ROTC 시절에 전방 가서 받은 월급으로 오토바이 사고 전업사 차려 볼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방으로 못 가고 육군 통신학교 교관이 된 거지."
▲ 통신학교 교관이 되면서 통신과 인연을 맺게 된 거군요.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연이었죠.나는 빽도 없고 그래서 전방에 가겠다 싶었는데 1군 차출자 명단 부를 때 보니까 이름이 빠진 거야.2군,3군 부를 때도 안 나왔어요.
사령부 부를 때도 안 나오고….마지막으로 딱 10명 남았는데 교관이 "니들은 여기 남아야 한다" 그래요.
"일 벌어졌네,나 전방 가야 하는데…" 속으로 그랬지만 별 수 없었지 뭐.그래서 통신학교 교관을 한 거예요.
무선 학부에서."
▲ 통신 기술은 학교보다 군에서 더 많이 배웠겠군요.
"그런 셈이죠.그 당시에 제일 좋은 최첨단 장비를 내가 맡게 됐어요.
안테나만 뽑으면 전 세계 다 통하는 SSB(싱글사이드밴드) 장비.그게 1억달러 짜리였는데,그때 미국이 군사비로 원조하는 게 10억달러 좀 넘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마어마하게 비쌌던 장비죠.그래서 '고장 나면 큰일난다'고 신신당부받았지.그 SSB 장비를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니깐 이 분야에선 회로만 보면 딱 아는 전문가가 됐죠."
▲ 전업사 차리는 게 꿈이라면서 삼성에 입사하셨어요?
"통신학교 교관이었는데 돈이 모였겠어요? 그래서 삼성전자에 취직했어요.
그건 내 선택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죠."
▲ 그런데 왜 하필 삼성이었죠?(좌중에 소주가 한 순배 돌았다)
"삼성이 제일 부자 회사여서 그랬죠 뭐.그땐 이병철 회장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자였어.부자가 되려면 부자가 하는 대로 하면 되겠다 싶어서 갔어요.
(그는 의외로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 또 제대 3~4개월 남겨놓고 계엄이 선포됐는데 대전에 파견 갔다가 돌아와서 보니까 삼성에서 ROTC 출신 뽑는다고 해서 덜컥 지원하게 됐죠."
▲ 그때 삼성 입사 시험도 지금처럼 어려웠나요?
"삼성에선 사람을 까다롭게 뽑지 않았어요.
다른 거 안 보고 논술을 봤거든.시험지 큰 거 넉 장 주고 제목 주고….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건 할 수 있지.외운 걸 쓰라고 하면 골치 아프거든.역사나 물리 화학 문제처럼 안 본 걸 쓰라고 하면 못 쓰잖아."
▲ 정답보다는 자기 생각이 중요하다는 거죠?
"그렇지.직선적(linear)인 사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1 더하기 1은 2다…이렇게.하지만 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사고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야 진화론에서도 살아 남잖아.1,2,3 다음엔 꼭 4가 온다… 그동안 이런 게 우리나라 교육이었지.하지만 실제론 뭐라도 올 수 있잖아요."
▲ 창조적 생각이란 게 말이 쉽지 제일 어려운 건데,어떻게 트레이닝합니까?
"(쓴 소주를 반 잔쯤 마신 뒤) 회사 들어가자마자 창조력이 생기지는 않죠.일단 문제의 본질을 아는 게 중요하고,원인 분석과 해법에 대한 여러 가지 경영 기법을 훈련해야 해요.
아무 생각 없이 누가 하는 거 따라 하고 짜깁기하는 건 안 되고.물론 기법엔 능통해도 적용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지요.
거기서 실력 차가 나오는 거예요.
돈 주고 MBA(경영학 석사) 따러 갈 필요 있나.
외국 대학 MBA란 거…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러 가는 거 아닌가요?"
▲ '삼성 고시'라는 삼성직무능력시험(SSAT)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건 우리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과장 때도 테스트를 해 봤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정답 쓰려고 하면 틀려요.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자기 의견을 써야 해요."
▲ 삼성이 강조하는 S급 인재란 뭔가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무척 고민 되는 눈치) S급이란 정의하기 참 힘들어요.
눈에 잘 안 띄고.그러니 S급 인재를 보는 눈을 먼저 가져야겠지.S급을 뽑은 사람이 S급이 되어야 하겠지요."
▲ 부하 직원 만족도는 얼마나 되세요?
"80점 정도.그래도 세계를 제패하려고 한다면 100점을 목표로 해야겠지요.
높이 뛰기할 때 한 번 보세요.
대구 챔피언을 하려면 1m30cm만 뛰어도 되죠.국내 챔피언은 150cm.하지만 세계 챔피언이 되려면 2m는 뛰어야 되고 혹독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죽었다 깨어나면서 모든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얘깁니다.
어설프게 해서 세계 챔피언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 부하 직원 중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은?
"내가 안 챙겨 봐도 다 해놓고 있는 사람,일부 지시만 해도 전체를 알아서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전체 부하들 중에 3~4%는 돼요.
사실 3%만 해도 많은 거예요.(얼굴이 밝아진다.정말 만족스러운 표정)
▲ 그동안 생활해 오면서 어떤 상사를 가장 좋아하셨죠?
"상사가 좋을 수도 있고 싫을 수도 있죠.하지만 그렇게 하나 하나 비교하다 보면 직장 생활이 어려워져요.
비교하면 고통이 따르니까.
가능하면 비교하거나 신경 쓰지 말아야 돼요.
그런데 됨됨이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은 오래 안 가더라고요.
길어 봐야 1년.좋은 사람들은 오래 있고….회사가 너무 잘 알아요."
▲ 부하 직원이 무능하다고 생각되면 어떡합니까?
"조직엔 새 물을 넣는 게 정상이지.하지만 실수와 실패는 구별해야 해요.
실수는 과정이고 실패는 결과지.실수가 실패는 아니잖아요.
물론 연속적으로 실수하면 바보지.나는 개인적으로 네 번까지 연속적으로 실수하는 것은 실패라고 보거든요.
회사에선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데 매번 실수하는 사람을 쓸 수는 없지요."
▲ 인간 관계도 그러신가요?
"정말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부하라면 끝까지 몰아붙여서는 안 되겠지.쓰러지려고 하면 잡아 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이테를 먹는 거야.나이테를 먹으면 더 단단해지죠.그러면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게 돼요.
이걸 관계 형성이라고 하죠.인간 관계에선 이게 참 중요한 거예요.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캐논이나 샤프 같은 회사들도 다시 평생 직장으로 돌아오잖아요.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는 부모 형제를 예로 들며 '일촌'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일촌이란 막말을 해도 진심을 이해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 인사 문제로 누구한테 스트레스 준 일도 있어요?
"그럴 수 있지.하지만 난 인사 평가를 한 번도 잘못해 본 적이 없어요.
그건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자 우리 이렇게 얘기만 할게 아니라 또 한 잔씩 듭시다.(건배)"
▲ 그래도 그동안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요즘 다른 사람들이 나와 누구를 비교하고 하는데(크게 웃는다).나는 그런 분들과 잘 협력하고 있어요.
난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게 내 의자다' 하면서 싸운 적이 없어요.
총괄 사장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그저 작은 선택과 선택의 결과치가 모여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 예기치 않은 선택의 결과들로 정보통신 총괄 사장이 된 거란 말씀이세요,아무런 야심이 없었는데도?(웃음)
"세상에 내가 원해서 되는 게 얼마나 됩니까.
물론 저도 한때 야망을 가졌을 때가 있었죠.아침마다 사장이 되자고 외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머리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겠죠.하지만 중요한 것은 갑자기 (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작은 선택들을 잘해서,또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됐다는 점이에요."
▲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은 어떻다고 보세요? 지장 덕장 용장 중에 하나 골라 보시죠.
"나는 별로 동의하는 거(스타일) 없어요."
▲ 본인의 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감이지.용기 있고 대담한 거… 거기에 덧붙인다면 뭐라고 할까… 실무적으로 갖춰져 있다는 점 정도라고 생각해요.
옛날엔 뭔가 결정할 때 많은 시간이 걸리고 두려움을 느꼈지만 지금은 빠르게 실패 없이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봐요."
▲ 스트레스받을 땐 어떻게 합니까?
"스트레스 안 받아요.
왜 받아? 결정을 다 했고 결과는 그에 따라 나오는 건데… "
▲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도 스트레스 안 받습니까?
"돈 찍어내는 인쇄기도 고장날 때가 있어요.
영업이익률은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지.내려오는 순간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모멘텀만 있으면 되죠.지금 얼마 버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미래 가치가 얼마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예요."
(술 한 잔을 돌리다가 갑자기 지갑이 화제가 됐다)
▲ 사장님,지갑 좀 보여주세요.
이거 되게 오래된 지갑이네요?
"(당황하며) 큰일났네.창피해서 어떡하나.
15년쯤 된 거예요.
별거 안 들었어요.
카드 몇 개 하고 신분증 정도."
▲ 그러고 보니까 휴대폰도 좀 오래된 거 같은데요.
"이거 안 되는데.(실랑이) 이거 벤츠폰이에요."
▲ 아니 왜 이런 구모델을 들고 다니시는 겁니까?
"물론 다른 모델들도 있지요.
근데 벤츠폰 '야(얘)'가 유럽 3G서 어려웠을 때 날 구해 줬어요.
노키아하고 붙었을 때 '야'가 구해 줬단 말이에요.
그래서 '야'를 이용해서 할 일이 또 있어요.
(기특하다는 듯 계속 만지작거린다)"
▲ 집에선 몇 점짜리 가장이세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웃음)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봉사도 하고 그래요.
집사람 발도 주물러 주고,일요일에는 교회 가기 전에 남대문 시장에 들러 순대국밥도 같이 사먹고 그래요.
(그는 현재 큰아들과 함께 일본에 살고 있는 며느리 자랑이 대단했다.
일본으로 유학 간 아들을 24세에 결혼시켰는데,손자가 벌써 두 명이란다) 며느리가 집에 오면 손톱 발톱 깎아 주고 안마도 해 주고 그래요.
근데 미대 조소과 나와서 그런지 힘이 되게 세.그림도 쓱쓱 잘 그려요.
휴대폰 그려봐라 하면 쓱쓱."
▲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아들 둘,딸 하나 있어요."
▲ 요샌 자녀 수가 경제력을 측정하는 도구라던데.
"경제력? 애들이 많으면 경제력이 따르게 돼 있어.너무 잘 가르치려고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 일본 유학도 보냈잖습니까?
"아마 내가 안 보냈어도 지가 갔을 거야."
▲ 자식들은 어떻게 살라고 가르치세요? 삼성전자 입사하라고 하시겠어요?
"기본적으로 지가 하고 싶은 일 하라는 거지 뭐.밑바탕에는 노인이 무거운 짐 들고 간다 하면 들어 주는 심성이 있어야겠지만,삼성 맨이 되든 안 되든 그건 알아서 하라는 마음이에요."
▲ 사위가 이뻐요,며느리가 이뻐요?
"사위 구박하는 건 딸 구박하는 거고 며느리 구박하는 건 아들 구박하는 거고.가화만사성이 좋겠지요."
▲ 서울에 집은 사셨어요?
"얼마 전에 샀어요,잠원동에.(이 사장은 구미 공장과 서울을 오가면서 여러 해 동안 서울에서 전세를 살다가 2년여 전 잠원동에 집을 마련했다)
▲ 집 좋아요?
"아 그럼요.좋아요.언제 한 번 우리 집에 갈래요? 여기 오신 분들 다 앉을 자리 있어요."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뵙고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참석자들 모두 박수)
김현지 기자 n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