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정권의 '혁신 사랑'이 극진하다. 말 많던 외교통상부 차관 인사가 30일 조중표 외교안보연구원장과 김호영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의 1·2차관 내정으로 결론이 났다. 김 원장은 외교부 차관으로는 전례 없는 행정자치부 출신이다. 청와대가 외교부에 혁신 문화를 이식하기 위해 집도의를 보낸다는 게 관가의 분석이다. 외교부가 고위직 인선을 타 부처에 개방하는 '혁신'을 이행하지 않아 청와대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이유는 청와대와 외교부가 지난 2년간 인사 개방 문제로 미묘한 신경전을 치렀기 때문이다. 중앙인사위원회가 1~3급 고위 공무원 임용을 개방형으로 운용하기로 한 데 대해 외교부는 본부 국장직의 20%를 개방하는 내용의 외무공무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진전이 없었다. 청와대 인사수석실은 혁신 의지가 부족하다며 외교부 지도부를 탓한다. 외교부는 의원들이 도와주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하소연이다. 청와대가 차관 둘을 문책성으로 교체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에 외교부는 일찍부터 뒤숭숭했다.

외교부에 개방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명문고· 국립대 출신이 요직을 장악하는 관례가 계속돼 왔다는 점에서 외교부는 엘리티시즘이라는 비난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다. 혁신을 위해서라면 김 원장 발탁은 나름대로 일리 있는 인선이다. 김 원장은 행자부에서 정부혁신포럼 준비단장을 지내고 지금은 공공행정 개혁이 주 업무인 유엔 거버넌스센터의 원장이다. 이른바 '정부 혁신의 대표 선수'다.

문제는 시점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그에 따른 유엔의 제재,6자회담 재개 등 한반도 문제를 놓고 우리 영토 밖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반면 정작 우리 외교부에는 때아닌 혁신 열풍이 불어닥칠 판이다. 외교부 2차관의 본래 임무는 다자 협상이지만 김 원장은 혁신,인사,예산 세 가지 업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외교부에 새로운 혁신 사업들이 생겨나고 그 성적에 따른 인사 평가 제도가 도입될 것이라는 등 설이 분분하다. 일부 외교관들 입에선 이런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혁신도 좋지만 협상은 언제 하란 말이냐"고.

정지영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