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사십이면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인데,40줄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더 흔들린다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성선경씨(46)의 신작시집 '몽유도원을 사다'(천년의시작)는 사십 중반을 지나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한 시인의 꾸밈 없는 자기고백서다.

사십대에도 아직 '불혹'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그는 '불혹'과 '미혹',혹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리잡지 못하는 이 시대 사십대들의 일상과 내면 풍경을 진솔한 언어로 드러내 보인다.

'……불혹(不惑)……/들녘에 선 한 촌로나/촌로의 낫 아래 베어진 벼 밑동 같아서/그저 그러하여서/한 점 미혹됨이 없는 시(詩)여야겠는데…(중략)…저 들녘에선 흔들리는 허수아비/장바닥을 뒹구는 널부러진 호미/혹은 괭이자루/밑창 떨어진 헌 짚신짝/배추꼬리나 무우꼬랑지 같은/시인(詩人)이여'('불혹(不惑)' 중)

'불혹'과 '미혹' 사이에서 방황하던 시인은 '목욕탕'을 찾아간다.

'목욕탕 가는 남자'라는 부제가 붙은 13편의 연작시에 자기정체성을 찾아나선 사내의 내면 풍경이 오롯하게 드러난다.

시인에게 목욕탕은 자아의 내부로 깊숙이 육박해 들어가는 통로인 셈이다.

'…뜬금없이 나는 뭐냐고 대드는 아내에게 눈 동그랗게 뜨는 아내에게 나는 그래 미안타 미안타 하면서 돌아앉아 생각하니 그럼 나는 무어냐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 할머니 앞에서 늘 우리 장손이었고(그게 난가) 동생들 앞에서는 늘 큰형이었고(그게 난가) 학교에서는 아이들 앞에 늘 우리 선생님이었고(그게 난가) 우리 아이들 앞에서는 늘 우리 아빠였고(그게 난가) 당신은 직장도 있고 시(詩)도 쓰고 어쩌고 하는 그래 당신 앞에서는 늘 남편이었고(그게 난가) 아 나는 무엇인가'('나는-목욕탕 가는 남자' 중)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