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스로 서민이라고 자처하는 친구들과 송년 모임을 가졌다. 앉자마자 부동산 교육 실업 문제가 화제였다. "기자 생각부터 들어보자"는 대접(?)에 어쩔 수 없이 아는 체했지만 동석자들의 반응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세상은 그렇게 교과서적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야"라는 면박만 받았다.

그리고는 친구 A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면 집값이 잡힐 것으로 말하는데 너무 단선적인 생각이야. 분양원가 공개한다고 해봐. 건설회사들은 임직원들 월급 잔뜩 올려서 원가를 높이겠지. 그 뿐이겠어 하도급업체를 친인척 회사로 만들어 공사비를 넉넉하게 주는 일도 생길거야. 지금은 하도급업체 쥐어짜고 임직원들 임금도 최대한 낮추면서 다른 업체와 원가 경쟁을 하지만 원가공개가 시행되면 누가 그렇게 하겠어. 건설업체들은 원가경쟁 할 필요없이 적정 이윤을 보장받게 되고 분양가는 제자리 아니겠어."

실업문제에 대해서는 B가 한마디 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잘 모르지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요즘 대학 졸업생들 중소기업은 웬만해서 쳐다보지도 않지만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삼성이나 현대차 등 대기업 계열사라면 거기 취업하려고 애를 쓰는 게 현실이야.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는데 청년실업률은 높아지는 이유지. 그런데 대기업의 투자를 막는 이유가 뭐야. 이제 대기업 계열사와 경쟁할 정도의 중소기업이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모르는 것 같아."

C도 거들었다. "사교육비 줄인다고 내신 위주로 입시제도를 바꿨더니 이제 체육 음악 미술까지 과외를 해야 하더라고. 내신 잘 받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 정부가 우리나라 공교육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이들의 얘기가 지금 우리 사회에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닐 게다. 아니 아주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리가 있어 보이는 세상의 이치인 것만은 사실이다. 2년 전 참여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 강남 전셋집으로 옮긴 한 인사에게 "강남에 살아보니까 어때요"라고 물었다. 그 인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살기에 편하던데요"라고 대답했다. 속으로 "그게 현실입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 사람들은 종종 기자나 교수 교사 공무원 정치인들에게 세상물정(世上物情)을 잘 모른다고 타박한다. 오죽하면 은퇴할 때 "퇴직금을 노리는 사기꾼을 조심하라"는 충고까지 할까. 세상의 평가가 맞다면 교수나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들은 작금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 들기에 앞서 세상물정을 더 알아야 할 듯 싶다. 하물며 그동안 현실에 대해 부정적이며 비판적 시각으로 살아온 참여정부의 매신(昧臣:세상물정에 어두운 신하)들은 아집과 이론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돌아가는 이치를 먼저 체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빌 클린턴은 "문제는 경제야,멍청아(It's the economy,stupid)"라며 경제에 실패한 공화당을 몰아붙여 승리했다. 현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은 "문제는 현실이야,멍청아(It's the reality,stupid)"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김상철 산업부장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