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대세 하락기에 전문가들이 수출기업에 권하는 몇 가지 대책이 있다.

중장기 선물환 매도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나중에 실제 환율이 떨어지더라도 현재 환율로 수출대금을 환전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첫 번째다.

또 하나는 결제통화 포트폴리오에서 달러화 비중을 낮추고 유로화 엔화 등 강세통화의 비중을 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질 때는 이런 대책들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모든 시장 참가자들이 달러화 약세를 점치고 있는 여건 속에서는 좋은 가격에 선물환을 매도하기 어렵고 좋은 조건으로 결제통화를 바꾸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 취약한 외환시장

여기에다 지난해 국내 외환시장의 하루평균 거래량은 223억달러로 미국의 4.8%,일본의 11.2%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협소한 시장규모 때문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고,일단 한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싶으면 시장참가자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신용상 연구위원은 "환율 급등락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높은 달러화 의존도를 줄이고 결제통화 다변화와 외환자유화 등을 통해 국내 외환시장의 기초체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결제통화 다변화도 쉽지 않다

하지만 결제통화 다변화가 현실에서 그다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경영활동이 국제화돼 있는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지난 1년 동안 자사의 결제통화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율을 겨우 5∼10%포인트밖에 낮추지 못했다.

기업 관계자는 "수출대금을 달러화 대신 상대적 강세통화인 유로화나 기타 통화로 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면 '그렇다면 수출가격을 깎자'고 덤벼드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이쪽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는 외환시장의 속성상 상대방에게 환차익을 호락호락 넘겨줄 리가 없다는 얘기다.

삼성과 LG가 이런 형편이라면 협상력이 취약한 중견·중소기업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을 게 뻔하다는 지적이다.

또 조선업처럼 해운사들이 무조건 달러화 베이스로 발주를 하기 때문에 결제통화를 다변화하기가 원천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많다.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원·달러 환율 하락이 계속된다면 생산·판매활동에 대한 전면적인 글로벌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원화를 기반으로 하는 경영활동이 한계를 드러낼 경우 수출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현지화 전략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