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信 <한국소비자보호원 원장 Lchung@cpb.or.kr >

얼마 전 고속버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바둑판같이 정리된 고속도로 옆 풍경은 한가하기만 했다.

그에 반해 고속도로는 화물과 승객을 실은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달리고 있었다. 자연은 무심한데 사람들만 분주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을 달리던 고속버스는 충청도 어느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승객들은 쪼그린 다리의 피로를 풀거나 또는 볼일을 보러 몇 사람은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차안에 남아 밖을 구경하거나 졸린 잠을 청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 갑자기 버스 안에 둔탁한 소리가 두세 번 들렸다. 졸린 실눈으로 버스 안 풍경을 보니 30~40대로 보이는 두 남자가 손목시계를 손에 쥐고 버스의 천장을 '탁' '탁' 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멀쩡한 시계를 그것도 금테를 두른 좋은 시계 같은데 천장을 치다니…. 눈이 번쩍 뜨였다.

텔레비전의 한 개그프로그램에 '마빡이'라는 인물이 등장해 규칙적인 제스처와 함께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세게 치는 모습이 연상됐다. 처음에는 혼자서 하다가 점점 호응도가 높아지자 이젠 여러 사람이 각기 다양한 제스처와 손짓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국민체조 하는 흉내를 내기도 하고,군인들의 체조모습 등 다양한 동작과 함께 자신의 이마를 힘껏 때리면서 관객과 시청자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이 발전해서 요즘은 시청자가 하는 동작을 신청받아서 자신의 이마를 때리는 데까지 발전했다.

힘들고 아프지만 참으면서 자신의 이마를 힘껏 때리는 광경은 관객과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래도 이들은 자신들이 광고를 수주하거나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자학(自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좀 색다른 행동이나 물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조용한 고속버스 안에서 금박을 입힌 손목시계를 버스 천장에 부딪쳐 승객의 관심을 모은 그들이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수출하는 시계인데,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부가가치세만 받고 그냥 준다.

단,모두에게 줄 수는 없고 이 중에 두 사람에게만 줄 수 있다"면서 행운(?) 번호를 돌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당첨되지 않고 뒷줄에 앉은 아주머니가 당첨되셨다. 나는 그 아주머니가 만원짜리 몇 장을 건네고 나서 횡재라도 한 표정으로 재빨리 시계를 가방 속 깊숙이 넣는 모습을 보았다.

마빡이가 자신의 이마를 때린 것과 장사꾼이 시계로 버스지붕을 친 것은 관객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행동이지만,아주머니가 거저(?) 받은 그 손목시계는 소비자보호,특히 소비자교육의 필요성을 일깨운,내 가슴을 치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