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사건 수사는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들과 이들의 간첩 혐의를 밝히려는 공안당국이 벌인 기싸움의 연속이었다.

검찰은 장민호씨 등에게서 압수한 문건을 토대로 피의자들을 추궁했고, 민노당원인 최기영ㆍ이정훈씨를 제외한 이진강ㆍ손정목씨가 장씨와 연계성을 시인했다고 한다.

이번 마라톤 수사는 변호인 접견권 등을 둘러싼 각종 논란거리와 함께 흥미로운 뒷얘기도 많이 남겼다.

◇ `지령-보고' 퍼즐 맞추기 주효

장씨는 체포된 다음날 오후 변호사를 접견한 뒤부터 묵비권을 행사했고 뒤이어 구속된 피의자들도 입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수사는 한 걸음을 내딛기 힘든 상황이었다.

검찰은 국정원이 장씨 등에게서 압수한 방대한 분량의 문건을 날짜별로 정리하면서 북한의 지령과 그와 짝은 이루는 보고 문건을 찾는 데 주력했다.

퍼즐 맞추듯 특정 지령과 이에 상응하는 보고 문건을 찾아낸 뒤 이를 근거로 피의자들을 추궁하자 그들 중 일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수사팀 관계자가 전했다.

서로 같은 암호 체계로 이뤄진 문건도 이들의 혐의를 입증할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장씨와 손씨가 주고받은 지령-보고 문건의 암호가 일치하면 이는 두 사람이 내통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봤다는 것이다.

여기에 검사 1명이 피의자 1명을 전담해 장시간 면담하면서 인간적인 신뢰를 쌓은 점도 피의자들이 조금씩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 단체 성격 놓고 난상토론

일심회의 실체를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국정원이 일심회를 반국가단체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일심회가 국가변란을 직접 도모했다는 증거가 없어 이적단체로 결론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2차장검사 산하 공안 1.2부 검사 15명은 기소 시한을 나흘 앞둔 4일 한 자리에 모여 난상토론을 벌였다.

1980년대 이후 70여 건에 이르는 반국가단체와 이적단체 관련 판결문을 분석한 성과를 토대로 논의한 결과 반국가단체가 아닌 이적단체라는 의견이 절대 다수로 나타났다.

이런 결론을 도출한 데는 장씨가 "남북이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거쳐 통일돼야 한다.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변해서도 안된다"고 말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 초라해진 北 공작금

예상보다 적은 공작금은 북한의 경제난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과거 냉전시기 남파간첩들이 받았던 공작금 규모에 비춰 너무 초라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심회원들은 북한 공작원을 만나면서 고작 여행경비 수준인 200만~300만원 밖에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장씨가 북에 보낸 보고 문건에는 공작금을 더 보내달라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 노대통령 당선 정확히 예측

장씨가 북에 보낸 보고문 중엔 2002년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문건도 들어있어 수사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대선 당시 노대통령 당선을 선거일 1개월 전에 정확하게 예측해 북에 보고한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장씨에게 보낸 지령 가운데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심회 조직원들을 천금같이 여기고 있다'고 밝히는 등 일심회 활동을 높이 평가한 내용도 있다고 공안당국 관계자가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 기자 eyebrow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