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먼저 보낸 김정혜월 여사를

노을이 보살핀다

그녀가 홀로 표충사 입구 산 중턱에 집을 지은 것도 일몰 때문이다

여사는 일몰에 목을 헹구고 머리를 빗는다

누가 서쪽으로 집을 짓는가

기울어가는 것에 마음을 잇는가

털썩 떨어지는 저녁이 낱낱이 간곡해,

그녀에겐 둘이었으면 보지 못했을

청상의 빛깔이 하나 더 있다

쪽염,감염,치자염,홍화염에 눈물염이 덧들어 색색의 보자기들 털어 널면

질펀한 노을이 저속으로 온다

안으로만 번지는 말들

화덕 위 찻물이 끓으면 쪽의자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눈은 자주 먼 곳을 본다

점점 더 먼 곳을 본다 (…)

-이규리 '말은 안으로 한다'부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여인. 서쪽으로 집을 지은 그 외로움의 깊이는 얼마나 될까. 일몰에 몸을 담그고,노을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인가. 기울어가는 것들을 보며 견딜 수 없이 가슴 저려하던 세월을 수없이 흘려보냈을 것이다. 이젠 그 외로움의 극한을 넘어섰다. 그래서 노을이 그녀를 보살핀다. 그러나 몸은 말을 잃었다. 말은 안으로만 할 뿐이다. 눈은 자주 먼 곳을 본다. 지독한 슬픔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