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금기'로 여겨졌던 미술품 가격 공개가 중견·신생 화랑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영덕화랑을 비롯해 이화익갤러리,아트사이드,아트파크,PKM갤러리,장은선갤러리,에스파스 솔,토포하우스,두아트,스케이프,터치아트,공근혜갤러리 등 20여개 화랑들이 전시작품 가격표를 전시장에 배치하는 '클린 마케팅'을 도입했다.

경매시장 활성화 등의 영향으로 최근 시작된 미술품 가격 공개는 작품의 호가와 실거래 가격의 차이가 너무 커 '거품'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미술품 유통시장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화랑들은 그동안 작품값을 30% 정도 할인해 주는 관행 때문에 '고무줄 가격(이중가격)'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왜 공개하나=미술품 경매회사로 몰려가는 고객들을 붙잡기 위한 화랑들의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미술품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이 가격 투명성을 '담보'로 시장을 주도하다 보니 1년 새 매출이 3~4배로 커졌고,고객들도 화랑보다는 경매회사를 신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덩치가 커지는 경매회사와 경쟁하기 위해 화랑들이 '가격정찰제'를 통해 정면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호당 가격 산정 관행과 이중가격제 등 불신을 조장해 온 음성적 가격 정보를 공개하고 설득력 있는 가격체계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미술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포석도 깔려있다.

○공개사례=기본적으로 가격이 공개되면서 자체 마진 폭은 줄어들었지만 작품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일부 화랑과 아트페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화익화랑의 '김덕용 개인전'과 '남경민 개인전'에서는 가격 정찰제로 관람객이 평소 전시 때보다 2배 이상 늘었고 매출도 50% 이상 증가했다.

갤러리 쌈지가 미술품 대중화를 기치로 지난해부터 선보여온 10만~100만원대 작품들 역시 정찰제 실시 이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토포하우스도 지난 11월부터 100만~200만원대의 정찰제 작품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주문이 늘고 있는 추세다.

마니프가 주최하는 아트페어는 미술품 가격 정찰제를 시행해 성공한 케이스.지난 10월 행사 기간 동안 관람객을 2만명 이상 끌어 모았고 매출 역시 작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7억원을 기록했다.

이 밖에 공근혜갤러리를 비롯해 갤러리 나우,갤러리 온 등 사진 전문 갤러리들도 전시 때마다 작품가격표를 공개하면서부터 관람객이 늘고 있다.

중견화랑으로선 처음으로 전시 작품 가격을 공개한 박영덕화랑의 박영덕 대표는 "군소·중견화랑업체들이 미술품 가격정찰제를 내세우는 마케팅을 잇따라 벌임으로써 미술품 유통 채널이 유연해질 수 있다"며 "미술 시장이 시장 가격 위주로 바뀌면서 유통투명성도 제고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