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 예상치 못한 계곡의 난기류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할까? 16인승 쌍발 프로펠러기 내부의 허술한 모습이 도통 미덥지 않다.

포카라∼좀솜 노선의 경비행기는 기상이 조금만 악화돼도 뜨지 않는다는 얘기에 마음이 더욱 불편해진다.

그러나 경비행기의 움직임은 그 작은 몸집만큼이나 가볍다.

짧은 활주로를 뛰어 올라 안나푸르나 정수리에 덮인 만년설을 향해 기수를 잡은 뒤,깊은 계곡 한 가운데를 아슬하게 비행하는 경비행기는 뜻밖에 흔들림이 없다.

난기류에 대한 걱정은 어느 새 탄성으로 뒤바뀐다.

조종석 앞창으로 다가와 동체 창옆으로 흐르는 8000m급 고봉 위 새하얀 만년설의 물결.까마득한 아래 계곡에는 더 기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걸어서라면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높이의 능선까지 차지한 납작한 집과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계단식 경작지 풍경이 그렇게 드라마틱할 수 없다.

오전 8시.30분 비행의 목적지인 좀솜의 공기가 싸늘하다.

백두산 높이인 해발 2710m의 고지여서인지,하늘 높이 뚝 떨어져 걸린 듯한 닐기리봉(7061m) 만년설의 차가운 기운 때문인지 수은주는 포카라보다 5도 이상 꺾여 있다.

공기의 질감도 포카라와 사뭇 다르다.

공항 밖에 마중나온 버스(?)가 신기하다.

트랙터를 개조해 만든 좀솜마운틴리조트의 운송수단이다.

트랙터버스는 공항보다 200m쯤 높은 곳에 있는 리조트까지 터벅터벅 걷듯 천천히 움직인다.

히말라야 초행길이라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고산증에 대비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좀솜에서 마르파까지 왕복 4시간여의 트레킹도 그렇게 천천히 시작한다.

좀솜은 안나푸르나 연봉 일주 트레킹에 빼놓을 수 없는 마을.북부 내륙의 '은둔의 땅' 무스탕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히말라야 트레킹이 아닌 체험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좀솜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두번째로 만나는 마을 마르파까지 걷는 게 적당하다.

인도 갠지스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칼리 간다키강('검은 강'이란 뜻)을 따라 이어진 길은 만년설이 빛나는 히말라야의 계곡미를 온전히 펼쳐보인다.

하상을 따라 오르내림이 없이 평탄해 걷기에 힘들지도 않다.

다만 거센 모래바람에 대비해야 한다.

오전 11시를 전후해 잔잔했던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확 바뀌어 이 시간대에 마르파에 가려면 그 바람을 안고 가야 한다.

거센 바람에는 길 위의 푸석푸석 누런 황토모래가 섞여 있어 숨쉬기조차 힘든 순간도 있다.

짐을 잔뜩 진 조랑말떼라도 만나면 등을 돌리고 멈춰 서 숨을 참아야 한다.

조랑말 발굽에서 튀어 올라 흩어지는 황토모래가 더해져 견딜수 없기 때문이다.

시양마을을 지난 황량한 길 위에 노점이 보인다.

서너명의 노점상은 바람을 막기 위해,앉은 키 높이로 쌓은 돌담에 등을 대고 앉아 암모나이트 화석이며 명상도구 같은 기념품을 판다.

하루에 얼마나 파는지는 몰라도 삶을 걱정하는 표정 따위는 찾을 수 없다.

이마에 띠를 둘러 맨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잰걸음을 하는 이곳 아주머니나,순박한 표정으로 멀리 떨어져 따라오는 아이들의 새카맣게 그을은 얼굴 표정도 마찬가지다.

도랑을 건너고 언덕을 넘어서면 마침내 마르파다.

닐기리봉은 여전히 코앞에 서 있지만 지나온 길과는 분위기가 딴판이다.

사막 한 가운데의 오아시스라고 해도 될까? 쟁기질하는 소의 울음소리가 잔잔한 밭과 과수나무 풍경이 싱그럽다.

맛있는 사과가 많이 나고,그 사과로 만든 사과브랜디로 유명한 '네팔 사과의 수도'라고 한다.

히말라야 트레킹 길에 이곳을 거치는 트레커들이 머물러 '좀솜의 압구정'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마을 집들은 깨끗이 포장된 골목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기념품 가게며 식당문을 열고 있는 티베트식의 하얀색 돌집과 그 돌집 사이 골목을 지나다니는 조랑말떼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곳 곰파(사원)는 제법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운데 놓인 마니차를 돌리며 100여개의 계단을 오르면 마르파 마을 풍경이 한눈에 잡힌다.

사각형의 집 지붕 위 가장자리마다 가지런히 장작을 쌓아 둔 모습이 그림을 보는 듯하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 같은 이 평화로운 마을 분위기는 이곳이 고향인 티베트 성자 마르파,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은 삼촌에 대한 원한에 삼촌과 그 가족을 몰살한 뒤 깨달음을 얻은 그의 제자 밀레르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리조트로 돌아오는 걸음이 무겁다.

바람은 등 뒤에서 부는 데 숨쉬기가 더 힘들고 머리도 찡하게 아파온다.

리조트 소속 가이드로 함께 간 빔 타파는 "고산병 초기 증세"라며 천천히 보조를 맞춘다.

손을 잡거나 부축을 하며 뒤처진 발걸음을 거들지는 않는다.

히말라야에서는 오직 혼자 견디고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늦었다고,떨어졌다고 조바심을 내면 안된다.

반드시 쉬어 심호흡을 하고 뒤를 돌아보라.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이면 늦더라도 도달하지 않는가."

두 세 걸음 가다 쉬다 하며 천천히 입을 여는 타파의 말이 '서두르지 않는 곳에 가장 빠른 길이 있고,온갖 목적을 버리는 데 가장 순수한 목적이 있다'는 밀레르파의 설법을 닮았다.

좀솜(네팔)=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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