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孝鍾 < 서울대 교수·정치학 >

출범 후 지금까지 항진해온 '노무현호(號)'의 항해일지를 들여다보면,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자신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며 주저없이 결투를 신청하는 투사가 생각난다. 요즈음 10% 미만 지지율의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통합신당 문제를 놓고 요란스럽게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면,좁은 다리 하나를 놓고 먼저 지나가겠다고 곰과 사자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좀 민심을 돌아보라!" 영락없이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전락한 국민들이 노 정권에 대해 하고 싶은 소리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노 대통령의 말과 행보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울분과 격정을 쉴새없이 토해 내는 '서러운 대통령'의 모습이다. 노 정권은 '프로'보다 '아마추어'를 닮았으며,'현장'보다 '서신'을 중시하고,'민생'보다 '코드'에 열을 올린다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대통령은 서러웠다. 하도 서러움과 격정의 토로(吐露)가 잦다보니,혹시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서러움과 회한을 권력의 본질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민주권력이란 설득과 소통(疏通)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함이지,'카타르시스'용으로 만천하에 울분을 쏟아놓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인사가 반대에 부딪치거나 자신의 정책이 실패해서 역효과를 낳을 때 억울함을 느꼈고 또 서러움을 주체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한번이라도 대통령이라고 대접해 본 적이 있느냐"며 절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과 언론,야당의 충고나 비판을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감수해야 할 직무상의 양약(良藥)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진정성을 가진 개인 노무현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간주해서 몹시 분노를 느끼고 괴로워했던 것 같다. 그와 더불어 권력을 공유한 386 참모들 역시 한과 서러움에 복받쳐 있기는 마찬가지다. 여론과 언론의 비판에 미동도 하지 않는,이른바 '오기정치'의 출현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노 대통령은 '지는 해'의 낙조(落照)를 맛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의 살길을 찾아 떠나고 또 대통령을 밟고 지나가려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서러움과 고독은 '깊어가는 겨울밤'만큼이나 더욱 더 깊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싶다는 야망까지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민심도 놓치고 개혁 에너지도 소진된 대통령으로서 자나 깨나 레임덕 걱정이나 할 뿐,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그래도 백조처럼 마지막에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추려면 노 대통령은 남에게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도와야 한다. 그래야 하늘이 돕는다. 그러려면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권력이 서러워하고 억울해 하며 고독과 시름에 잠기기보다는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런 다음 5년 단임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여름의 무성함을 자랑하다가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고 나목(裸木)으로 변해가는 나무들이 벌거벗지 않겠다고 오기를 부리는 것을 보았는가. 가을의 들판을 마음껏 뛰놀다가 겨울까지 살고 싶다고 몸부림치는 메뚜기를 보았는가. 몸부림을 친다면,천년을 사는 학이 되지 왜 한철만 사는 메뚜기로 태어났느냐는 비아냥을 받을 뿐이다.

이 시점에서 열린우리당과 힘겨루기를 하고 또 각종 실패의 책임을 야당에게 떠넘긴다면,'순리(順理)의 정치'보다는 '무리(無理)의 정치'를 위한 전략적 사고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한낮의 열기가 지나면 석양이 찾아오듯 서러움을 거두고 국정현안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불살라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지는 해'일지언정 하늘을 황혼 빛으로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