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 이후 외국 투자은행들에 지불한 막대한 수업료를 아시아 시장에서 거둬들이자." 최근 윤증현 금융감독원장이 국내 금융기관의 아시아시장 진출을 독려하며 한 말이다.

윤 원장의 말대로 '아시아판 골드만삭스'를 꿈꾸는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이머징마켓에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이겠다는 꿈을 가진 국내 증권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다양한 금융상품의 개발을 가로막고,엄격한 전업주의를 강요하는 낡은 규제로는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첨단 금융 기법과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글로벌 투자은행(IB)과의 경쟁이 버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의 성공을 위해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을 통한 규제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아시아 이머징 자본시장 진출 활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달 초 인도 현지에서 설립인가를 얻어 본격적인 영업 준비에 들어갔다.

국내 금융회사 중 처음으로 인도 소매 자본시장을 공략하는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에서 끌어모은 자금으로 좋은 성과를 내 이를 기반으로 인도 기관 및 개인을 공략하겠다는 복안이다.

미래에셋증권도 인도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1년반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한 현지 뮤추얼펀드 판매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국성호 신한은행 인도법인장은 "미래에셋의 인도 진출은 해외 첫 소매시장 진출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금융사의 일획을 긋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베트남에서는 한국투자증권과 골든브릿지가 시장진출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자회사인 한국투신운용은 이미 1000억원 규모의 베트남 1,2호 펀드를 조성해 베트남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현재 3호 펀드도 조성 중이다.

김승환 한투운용 호찌민사무소장은 "1000억원 중 약 450억원을 집행해 베트남 상장업체의 주식과 장외주식을 사들였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내년에 현지업체와 제휴해 합작증권사도 설립할 계획이다.

골든브릿지는 현지 증권사 인수를 추진 중이다.

문구상 골든브짓지 하노이법인장은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베트남에 제2의 골든브릿지 그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 증권사들은 틈새시장 공략에 힘쓰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중국 장시성의 부실채권 2억달러를 인수해 660만달러 규모의 무수익여신(NPL)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금은 쓰촨성에서 제2의 부실채권 투자를 모색 중이다.

굿모닝신한증권은 미국계 투자회사인 코스톤과 제휴,1억달러 규모의 중국펀드를 설립키로 했다.

미래에셋은 중국 대도시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지난 7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은 상하이 푸둥지구에서 건설 중인 홉슨빌딩을 23억4000만 홍콩달러(약 2869억원)에 매입했다.

우리투자,한국증권 등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I) 분야에 뛰어들어 중국에 주택을 지으려는 국내 건설사에 투자했다.

시급한 규제 완화

맵스자산운용은 요즘 베트남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부동산투자전문 자산운용사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높은 상승률이 기대되는 주식을 편입시켜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상품이지만 국내 금융감독 당국은 신중한 입장이다.

한 펀드에서 부동산과 주식을 편입시킨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브릿지증권도 베트남 기업의 회사채 등을 인수하는 펀드를 추진하고 있지만 감독당국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베트남 기업의 회사채는 대부분 신용등급이 낮은 정크본드여서 허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준 회장은 "금융상품은 시장에 따라 다양한데 감독당국이나 관련 규정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금융회사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금융상품의 포괄주의가 도입된 자본시장통합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덩치를 키우는 것도 과제다.

중국 본토 A주시장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해외적격기관투자가(QFII)' 자격을 받아야 한다.

증권사의 QFII 승인 자격은 자본금 10억달러,관리자산 규모 100억달러 이상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장 큰 우리투자증권의 자본금 규모는 7000억원도 안된다.

규모가 작다보니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사업은 국내 고객으로부터 돈을 모아 현지에 투자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국증권연구원 김형태 부원장은 "업무 영역을 허물고 규제 혁신을 통해 증권사의 거대화를 촉진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은 증권사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