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珠衍 < 고려대 교수·경제학 >

2년여의 논란 끝에 지난달 30일 비정규직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노동부에 따르면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계속 악화되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남용을 개선하고자 하는 게 이 법안의 취지다. 따라서 비정규직(기간제·단시간·파견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처우를 금지하고 노동위원회의 차별시정절차를 마련한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입법취지 대로 이 법이 실제로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 이 법의 이해(利害) 당사자인 경영계와 노동계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경영계는 2년만 고용할 수 있다는 규제나 차별금지 및 불법파견근로에 대해서도 직접고용을 의무화하는 것 등이 기업의 경영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노동계는 2년 뒤의 정규직화나 직접고용에 따르는 노동비용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2년이 되기 전에 기간제(期間制) 근로자의 대량해고나 파견근로자에 대한 계약파기 등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는 것은 선진국들에서도 공통적인 추세다. 이런 고용형태의 확산은 기업들이 노동비용부담을 줄이고 기업의 필요에 맞게 해고나 배치 및 작업강도 등을 조정하는 유연한 인력활용을 위해서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더 나은 수입이나 일자리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비자발적인 선택을 한다. 올해에도 정규직이 93%가 자발적(自發的) 취업인 반면 비정규직의 자발적 취업은 48.1%에 불과하다.

결국 비정규직 고용은 시작부터 노사간의 자유로운 계약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상당한 주도권을 가지고 절실히 원해 이뤄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보호법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를 계속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미 이 법이 통과되면서 국내 공공부문에 속하는 한 공사(公社)는 2년의 고용계약을 채우지 않기 위해 상당수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이번 달까지만 일해 달라'는 통지를 했다고 한다. 공사조차도 이러한데 민간회사들이 2년 후에 노동비용이 급격히 오르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정규직화나 직접고용을 하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2004년에 경총이 조사한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시 인력운영계획에 대한 기업 설문에서도 "정규직 전환"이라는 응답은 11.6%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정부 대신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국내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의 낮은 임금과 높은 고용불안이 노조가 있는 정규직 근로자들과 대조되면서 노조가 비정규직을 챙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국내 노동조합의 구조적 특성을 볼 때 기대하기 어려운 해결책이다. 국내 노동조합은 기업단위의 정규직 근로자중심의 조직이고 이 조직원칙은 수십년간 유지돼 왔다. 그 조직이 계속 생존하고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규직 근로자의 보호에 충실해야 한다. 명분과 달리 실질적으로 기업 노조가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보호가 비교적 잘되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선 그 배경에 정치적 역량을 갖춘 강력한 국가나 산업별 노조연맹이 버티고 있다는 점도 우리와 다른 점이다.

국내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는 올해에 정규직 임금이 100일 때 51.3%에 머물고 있다. 또 비정규직은 교육·훈련이나 승진의 기회도 훨씬 부족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도 적다. 올해 국내 395만명의 저임금계층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약 90%를 구성한다.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좀더 현실적으로 진지하고 심각하게 나서야 할 때다. 정부의 어떤 다른 부처보다도 특히 노동부의 정책은 그 정책이 집행되는 국내 노동시장의 환경적 토양을 고려해야 한다. 독특한 국내 노동시장의 토양,특히 비정규직 고용에 주도권을 쥔 사용자들의 입장 등이 반영되지 않은 정책은 의도한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년 7월 이 법이 시행될 때까지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