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하는 나라에서,특히 글로벌 경제 환경 하에서 산업정책의 유용성은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다. 말할 것도 없이 산업정책의 유효성의 주된 논거는 '시장의 실패'다. 여기에 설정된 경제정책 목표의 달성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그리고 격변하는 국제경제 환경,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국민경제와 기업을 내팽개쳐 놓을 수 없는 정부의 사명이 추가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장경제가 성숙한 국가일수록 산업정책의 여러 수단들이 가져오는 가격 체계의 왜곡과 그 결과 초래되는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등 소위 '정부의 실패'가 지적되고 대안(代案)으로 경쟁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에 있다.

선진국들에 있어서 이 양 정책방향은 극단적 대립보다 구체적인 경제정책 입안 과정에서 대체로 조화(調和)되고 있는데,그 비결은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구체적인 정책 입안에서 시장분석의 기초가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환경의 변화로 한국 경제는 기존의 '경제의 운영 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받고 있다. 이는 바로 산업정책의 유용성에 관한 문제 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쟁점에 대한 충분한 문제의식과 부각,그리고 이에 대한 적절한 접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한편으로 종전의 산업정책은 계속 정부 경제정책의 실질적 내용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반면 산업정책적 제(諸)수단에 대해 경쟁정책적 관점에서의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기업과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정책 입안 현실이다.

각 분야의 산업정책 관장 부서들은 그간 변화된 국내외 시장 구조,이에 대응하는 기업역량의 엄청난 변화,소비자 의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원과 규제,가격 기구에의 간여,정부 주도 하의 사업자단체를 통한 정부 의지의 관철이라는 종전의 산업정책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채택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의 한계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경쟁 당국 역시 그간의 비약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시장분석 능력의 취약,시장의 핵심 요소가 되는 산업과 기업 그리고 소비자 문제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나아가 현실적 대안제시 기능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어 관련 산업정책과 조화될 수 있는 체계적인 정책의 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요 경제정책이 혼선을 거듭하고 있는 주요 이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시장구조와 관련 산업의 문제점 및 비효율성을 개선하려는 정부 역할의 모색이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의 양면(兩面)에서 동시에 추구되지 않는 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특정 산업,품목과 관련된 시장의 구조적 성격을 공급 측면에서는 경쟁성을 중심으로,수요 측면에서는 수요자 선택원리를 기준으로 엄밀하게 분석,규명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시장구조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산업과 기업이 당면한 문제를 경쟁촉진적 수단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가는 과정은 경쟁정책의 주 관심대상이 되고 시장의 불완전성 보완을 산업과 기업정책의 역할 및 가능성에서 찾는 과정은 산업정책의 주 영역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은 두 가지 정책 영역의 자연스러운 컨버전스로 이어질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노동,복지 등 소위 비교역재(非交易財) 부문도 같은 문제인식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가는 데에는 우리 정부의 조직원리가 큰 애로다. 우리 정부의 조직은 아직도 기능별 역할보다는 산업별,품목별 위주의 조직원리로 편성돼 있고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오리엔테이션을 가지고 있어 이런 방향으로의 전환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와 지식산업화의 새로운 경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시장분석 기법의 축적과 경제행정 조직의 재편을 바탕으로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의 컨버전스를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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