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노조는 2004년 여름 보름간의 불법파업을 벌인 뒤 완전히 새 노조로 탈바꿈했다.

투쟁도 없어지고 무분별한 요구도 사라졌다.

아예 투쟁 중심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을 탈퇴해 버렸다.

강경투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한 뒤 상급단체의 필요성이 없어진 때문이다.

이제 공장 안에는 상생의 노사문화가 가득 메우고 있다.

강경투쟁을 벌이던 노조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상생의 합리적 노사문화로 운동노선이 바뀔 수 있을까.

바로 철저한 법과 원칙이 적용된 덕분이다.

회사는 불법파업이 끝난 뒤 무노동무임금을 적용했고 파업 주동자에 대해선 징계를 했다.

파업을 벌이면 무엇인가 얻어낼 수 있다는 노조의 기대감은 산산이 부서졌다.

파업의 효용가치가 없고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노조원들도 절감했다.

이러한 노조의 자각은 새로운 노동운동을 창출했고 조직 내부에 상생의 기운이 돋는 계기가 됐다.

노조는 올해 임금조정 결정을 회사측에 위임했다.

'법과 원칙'이 가져다준 결과물이다.

법과 원칙이 철저히 적용돼 달라진 노조는 많다.

강경투쟁의 대명사였던 현대중공업 노조도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이 회사 노조는 1994년 60일 동안 장기파업을 벌이고 엄청난 임금손실을 체험한 뒤 운동노선을 바꿨다.

매년 파업을 통해 두자릿수 임금인상을 얻어냈던 노조는 파업이 실패로 끝나자 더이상 강경투쟁의 효용성이 없다고 판단,상생의 길로 운동노선을 바꿨다.

올해로 12년째 무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노조는 파이키우기에 나서며 노조원들의 임금소득을 올리고 있다.

효성 태광산업 고합 등 화섬업계 3사 노조도 한때 장기파업을 겪었지만 '파업=손실'이란 사실을 확인한 뒤 투쟁을 접은 상태다.

2001년 83일간의 장기파업을 벌인 태광산업노조는 민주노총에서 탈퇴해 강경투쟁을 접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역시 강성인 효성노조도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에서 한국노총으로 전환해 투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조직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파업을 연례행사처럼 벌이는 강경노조는 무노동무임금 원칙 등을 철저히 적용해 바뀌는 경우가 많다"며 "현대차 노조도 원칙대로 대응하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쟁에 싫증을 느끼는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소유한 위원장의 등장으로 조직 분위기가 바뀐 노조도 있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해마다 강경투쟁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울메트로 노조가 대표적이다.

투쟁의 덫에 빠져 있던 이 노조에 햇볕이 들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온건실리주의 노선을 표방한 배일도 위원장이 당선되면서부터다.

온갖 어려움을 겪은 뒤 복직한 그는 협력적 노사관계만이 회사의 성장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상생의 운동철학을 전파해 나갔다.

노조원들이 투쟁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을 즈음 나타난 배 위원장은 많은 노조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결국 서울메트로를 파업 없는 일자리로 바꿔 놓았다.

지재식 KT 노조위원장 역시 리더십을 통해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인물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매년 강경파업을 주도하던 KT는 민영화가 된 2002년도에도 퇴직자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 위원장에 당선된 그는 2003년 8월 협상에서 선협상 후투쟁을 선언했다.

조직 내에서는 투쟁을 하지 않는다는 반발세력도 많았지만 그는 끈기를 갖고 기본급 2%의 임금인상률을 얻어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