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과 10만원권을 발행하는 내용의 고액권 발행법안(한국은행법 개정안)이 1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금융경제법안 소위원회에 상정됐으나 가결되지 못하고 보류됐다.

그동안 여야 의원들 대부분이 고액권 발행에 찬성의견을 나타냈기에 무난히 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막상 회의가 시작되자 여당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여당 의원 중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입장을 보여온 열린우리당 우제창 의원은 이 자리에서 "개인 철학으로는 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고 본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이것을 법률로 규정해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옳지 않은 만큼 법개정 대신에 재경위 차원의 '고액권 발행 촉구 결의문' 채택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이어 "개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가 5만원권과 10만원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이지 '발행해야 한다'가 아니다"며 "법안을 개정하더라도 고액권 발행 여부는 결국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지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고 법개정 무용론을 폈다.

같은 당 정덕구,이계안,오제세 의원과 민주당 김종인 의원도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소위 위원장인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참여정부조차도 우리나라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고 자랑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우리같은 경제대국의 최고액권이 1만원이라는 것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문제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이어 "참여정부의 최대 치적 중 하나가 바로 정경유착 고리를 끊었다는 것 아니냐"며 "말로는 정경유착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왜 고액권 발행을 집단적으로 막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지난 12일 회의에선 여야 의원 모두가 이 법안에 이의가 없다고 합의했었다"며 "이제와서 말을 바꾸면 소위가 그동안 지켜온 여야 합의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12일 회의에는 여야 의원이 각각 1명씩 밖에 참석하지 않아 의결정족수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합의'라고 할 수 없다"고 일축한 뒤 "고액권 발행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할 때 고액현금거래 보고기준을 현행 5000만원에서 1000만원 수준으로 낮춘 뒤 발행하는 것이 옳다"고 반박했다.

여야 간 논쟁이 격해지자 엄 위원장은 오는 19일 회의를 재개키로 하고 산회를 선포했다.

그러나 여당의원들이 법안처리에 대한 반대의견을 명확히 하고 있어 처리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

소위 소속 한 여당의원은 기자와 만나 "여당 의원들 간에 입장정리를 끝냈다.

고액권 발행법안은 절대 통과시키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인식.강동균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