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캐주얼게임 컨퍼런스(CGC).게임 전문가와 게이머 6명이 캐주얼게임에 관한 토론을 하는 도중에 사회자가 즉석 질문을 던졌다.

"한국 온라인게임이 대부분 미국에서 실패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이 질문에 6명 중 5명이 "앞으로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충격적인 답변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한국 온라인게임은 6년 전인 2000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와 '리니지2'를 들고 맨 먼저 입성했고 NHN이 이듬해 로스앤젤레스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공략에 나섰다.

넥슨 그라비티 등도 뒤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엔씨소프트를 제외하곤 대부분 고전했다.

한국 온라인게임이 미국 시장에서 정착하지 못하자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실패 원인을 분석한 자료도 나왔다.

게임업체 시에라온라인의 에드 조브리스트 사장은 "한국 게임이 정착하지 못한 것은 현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언어만 바꾸는 수준에 머무르지 말고 철저히 문화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업체들은 '길드워''라그나로크''리니지2' 등으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서는 성공 가능성을 입증했다.

'길드워''리니지2''시티오브히어로' 등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패키지로 판매해 좋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엔씨소프트'길드워'는 미국 캐나다와 유럽에서 1년 반 만에 패키지 30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엔씨소프트 북미 본사의 개발자 리처드 게리엇은 "MMORPG에서는 한국 게임이 최고라는 사실이 여러 차례 입증됐다"며 "미국 업체들이 한국 게임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캐주얼게임은 번역 등에서 문제를 노출했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온라인게임은 MMORPG뿐이다"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게임 스토리,마케팅,과금방식 등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미국에서는 온라인게임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패키지로 팔아야 하는데 한국 업체들이 이런 풍토에 적응하지 못했다.

게임을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대신 아이템을 돈을 주고 사게 하는 한국식 부분유료화 모델도 초기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행히 최근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넥슨아메리카가 서비스하는 '메이플스토리'와 NHN USA가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포털 이지닷컴(www.ijji.com) 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메이플스토리'는 이미 유료화돼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지난 5월 공개 서비스가 시작됐고 최근에는 동시접속자 수가 최고 7만명에 근접했다.

캐주얼게임 '건바운드''건즈온라인'과 플래시게임 보드게임 등을 서비스하는 게임포털 '이지닷컴'도 최근 동시접속자 1만명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특히 마이엔터테인먼트의 '건즈온라인'은 가입자가 500만명을 넘어섰다.

상황이 좋아진 것은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샌프란시스코에 법인을 설립하고 올 7월 이지닷컴을 오픈한 NHN은 사이트 구성,게임 내용,아이템 등을 철저히 현지화했다.

미국 게임업체 팝캡게임스의 제임스 거츠먼 이사는 "미국 업체들이 한국식 부분유료화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들려줬다.

올 6월 열린 캐주얼게임 컨퍼런스는 1년 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넥슨아메리카 김민호 마케팅팀장은 "1년 전과 달리 한국 온라인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며 "이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은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NHN USA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남궁훈 이사는 "한국식 과금방식인 부분유료화를 생소하게 생각했던 미국인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며 "게임 수준은 이미 인정받고 있어 과금방식만 정착되면 한국 온라인게임이 재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텍사스 오스틴·샌프란시스코(미국)=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