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지역을 비롯 도심권 낙후지역을 정비할 때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해당 지방자치단체를 대신해 재개발사업을 총괄 관리하는 '공영 재개발'이 확대되고 있다.

주공은 정부가 도심권 광역재개발과 개발이익 사유화 방지,재개발사업 투명성 제고 등을 위해 지난 7월 재정비촉진지구(이하 재정비사업) 제도를 도입한 이후 경기도 부천시를 시작으로 대전·제주시 등과 재정비사업 협약을 맺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출발단계인 지금 주공과 현지 주민 사이에는 갈등의 골이 깊어 재개발 장기지연 등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주공 등이 전체적인 재정비사업의 틀을 짜는 것은 물론 재정비지구 내 개별 재개발사업마저 독식하려 한다"며 반발하는 반면 정부와 주공 등은 "주민들의 오해"라며 난감해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 같은 마찰이 재정비지구마다 되풀이될 우려가 크다며 주공 등 공공기관과 민간업체 간 역할과 업무 경계를 명확히 하는 등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공 주도 재개발'에 주민 반발

서울지역 뉴타운 다음으로 도심 재개발사업 진도가 빠른 부천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내년 4월께 27개 재개발구역이 사업 첫 단계인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될 예정이지만,현지 주민들은 벌써부터 비상대책연합회를 구성해 주공이 주도하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등 집단 반발하고 있다.

장재욱 연합회 총무이사는 "주민들은 주공이 재정비사업의 전체 틀을 짜는 총괄사업관리자 외에 직접 개별 재개발사업의 시행까지 맡아 개발이익을 과도하게 환수할 것이란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시도 마찬가지다.

성남시는 철거대상 주택거주자를 도촌지구 등인근 임대주택단지 등에 임시로 이주시키고 재개발이 끝난 뒤 다시 입주시키는 '순환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주공이 이미 재개발사업 시행자로 정해져 있는 중3구역의 한 주민은 "주공이 임대아파트를 너무 많이 지어 땅을 가진 주민들의 손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반발 움직임은 인근 단대구역이나 금광·수진구역 등도 비슷한 실정이다.

○주민들 왜 반발하나

무엇보다 주공 등이 지자체의 위탁을 받는 형식으로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재정비촉진지구의 사업계획을 수립·관리하는 '총괄사업관리자'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직접 재개발사업 '시행자' 역할까지 도맡으려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의 의사가 무시된 채 '과도한 공영개발'이 이뤄져 재산권이 크게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행 '도시재정비촉진법'(도촉법)에서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 주민들이 구역별로 재개발조합을 설립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규정에 따르면 토지 등 소유자의 2분의 1만 찬성하면 주공·민간 모두 시행자로 참여할 수 있어 일반 재개발(3분의 2 이상 동의)보다 요건이 느슨하다. 더욱이 재정비촉진계획 수립 전까지는 개별 조합설립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도 주공을 사업시행자로 만들기 위한 정부의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공,"민간업체 보완일 뿐"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주공측은 민간부문의 시장실패 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뿐 주민이나 민간업체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부천 등에서 불거진 주민 반발은 '총괄사업관리자'와 시행자의 역할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란 게 주공측 설명이다.

주공 관계자는 "재개발구역 주민들은 총괄사업관리자가 개별 사업구역의 시행까지 맡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한 오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시행자 선정은 각 조합이 결정한다고 관련법(도촉법)에 규정돼 있다"며 "주민들의 요청이 반드시 선행돼야 주공이 사업시행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공은 특히 재정비촉진계획 결정 고시일부터 2년 안에 조합설립 인가를 못 받거나 3년 안에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못할 경우 주공이 지자체의 승인을 얻어 시행자를 맡을 수 있게 돼 있지만 이 경우에도 주민들의 협조와 동의가 없으면 사업추진이 어렵다고 해명한다.

주공 관계자는 "수익성이 낮아 민간업체들이 기피하는 지역 등 공공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에만 선별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공·민간 업무영역 명확해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과 오해를 줄여 재개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업체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주민의견 청취절차 등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연규 한국도시개발연구포럼 대표는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 기반시설 설치 부담이 늘고 20㎡ 이상 토지는 반드시 거래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재산상 제약이 큰 만큼 촉진지구 지정 전에 주민동의를 받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민영 재개발이 힘든 지역은 공공이 재개발을 주도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까지 주공이 참여할 경우 민간시장이 위축될 수 있는 만큼 공공과 민간의 역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욱진·이정호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