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노무현 대통령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21일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민주평통) 상임위원회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당초 20여분 정도의 인사말이 예정돼 있었으나 노 대통령은 1시간10분간 작심한 듯 격정적인 어조로 참여정부의 안보·통일·외교정책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생생한 비유와 직설적 화법을 동시에 써가며 보수세력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 반대가 정의(正義)냐


노 대통령 연설의 요지는 '기왕 뽑았으면 제발 그만 좀 흔들고 맡겨달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모든 것이 노무현이 하는 것을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닙니까.

흔들어라 이거지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흔들어라.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놈"이라고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에 반대하는 보수세력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노 대통령은 "근 20년간 열배도 훨씬 넘는 국방비를 쓰고 있는데,북한보다 한국의 국방력이 약하다면 옛날 국방장관들 직무유기한 것 아니냐"며 "작전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놔놓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거냐.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쏘아붙였다.

○소신껏 하면 판판이 깨진다

참여정부의 정치 환경에 대한 어려움도 하소연했다.

노 대통령은 "안보의 핵심 개념은 평화"라면서 "제발 조용히 조용하게 안보하자"고 말했다.

"정부가 나서서 '국민 여러분,미사일을 쐈습니다.

라면 사십시오.방독면 챙기십시오'라고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 마디로 "미사일 실험발사 때 왜 국민한테 겁주지 않았느냐며 구박하는 건 난센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양심껏 소신껏하면 판판이 깨지는 게 정치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고향 친구들 만나기가 제일 미안하다"고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독립국가로서 체면은 유지해야

한·미 동맹에 대한 평소의 소신도 재강조했다.

"최소한 자주 독립국가로서의 체면은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 "미 2사단이 빠지면 다 죽는다고 국민들이 와들와들 사시나무처럼 떠는 나라에서 대등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우방이라 할지라도 수도 한 복판에,그것도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그 자리에 하필이면 그리 꼭 있어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북 군사적 우위의 연장선상에서 주한미군 2사단의 한강 이남 배치와 미군기지 이전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 참석자를 향해 "주위에 '기왕에 뽑았고,앞뒤 챙길 것은 재고 챙기는 것 같더라.좀 맡겨봐라'는 말을 한 번 해달라"며 지지를 부탁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