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감기 애증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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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 시인 >
날씨의 변덕이 심하다. 환절기라서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절기(節氣)마다 뚜렷하던 날씨의 경계가 흐려져 계절이 계절답지가 않은 것이다.
날씨의 변덕이 심할 때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있다. 그들 때문에 몸의 불평이 대단하다. 해마다 무슨 연례행사처럼 우리는 감기의 고역을 치르곤 한다. 이 심술 사납고 무례하기 그지없는 불청객은 언제나 예고 없이 불쑥 몸을 방문해 당혹감을 안겨주곤 한다. 달포 동안 내내 나는 내 몸 속에 장기투숙 중인 그들(감기) 때문에 종일 투덜대는 몸을 달래고 있어야 했다.
면역이 생기지 않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감기와 사랑, 그리고 구두에 달라붙는 진흙 같은 미련과 집착 등이 아닐까. 그렇다. 생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을 남기고 떠난 모진 사랑이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와 후끈 삶을 달궈놓듯이 감기 역시 면역이 없어 작년에 징글맞게 된통 앓은 감기를 올해 다시 앓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지천명(知天命)을 코 앞에 두고 찾아온 바이러스. 벼르고 왔는지 가난한 집에 들른 식객처럼 좀체 나갈 줄을 모른다. 참으로 능글맞고 뻔뻔하기가 천하에 둘도 없는 놈이다. 바이러스도 진화를 한다. 요즘 것들은 성질이 지랄 같아서 성긴 이빨로 질긴 살가죽을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뼈마디를 노근노근 갉아대기도 한다.
그들은 내 몸에 장기투숙하면서 긴한 약속을 깨뜨리라고 부추긴다. 또 식욕을 빼앗아 사는 즐거움을 달아나게 한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의욕을 뿌리째 흔들어 놓기 일쑤다. 그들이 멀쩡한 나를 쓰러뜨리고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저희 뜻대로 다스리고 주무르는 동안 아,나는 아무도 누구를 미워할 수가 없고 시기할 수가 없고 또 그 누구도 간절히 그립지가 않다. 나아가 어지간한 것에도 분노할 줄 모르게 된다.
확실히 그들은 힘이 세다. 길길이 날뛰는 몸 속의 욕망을 일거에 제압해 꼼짝 못하게 만드는 그들은 과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 때문에 나는 올 겨울에 주요하고 긴한 약속 서너 건을 지킬 수가 없었다. 나를 신용불량자로 만든 그들에게 그 때마다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는 이내 꼬리를 내리고 그들에게 비위를 맞추느라 일부러 만든 비굴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들을 화내게 하면 결국 내가 손해인 것을 어쩌랴. 제발 부탁이니 이제 내 몸 속에서 떠나 달라고 아첨을 떨고 투정을 부리고 짐짓 목청을 높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를 내가 어찌 꺾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 보름 몸 속을 떠돌며 나를 어지간히 진저리치게 만들던 그들이 마침내 떠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는 혹 그들이 생각을 바꿀까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다. 하지만 감기와 몸살을 앓는 동안 그들로 인해 조그마한 깨달음일망정 한 소식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그들을 무뢰한으로만 여길 수 있으랴.
몸살에 치를 떠는 동안 나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했다. 어서 이 축축하고 두꺼운 이불을 훌훌 털고 일어나 그저 갓 지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내는 것만을 소원했던 것이다. 생활이 피우는 애증의 불꽃이 가물가물 시들어갈 때에야 그들은 활동을 멈추고 내 몸에 미련을 두지 않고 서둘러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는 동안 욕망이나 애증의 도가 넘치면 그들은 다시 잊지 않고 나를 찾아와 허황으로 가득찬 내 몸을 또 아프게 채찍으로 내려칠 것이다. 그들은 몸을 혹사시키면서 내게 잊을 수 없는 성찰(省察)의 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격에 맞지 않게 언행하는 사람에게 흔히들 개 돼지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한다. 개 돼지가 듣는다면 역정을 내며 웃을 일이다. 개 돼지는 먹는 욕망에만 충실할 뿐 인간처럼 도를 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최소한 개 돼지만큼만이라도 살았으면 한다. 그럴 때 과부하에 걸린 자신의 욕망 때문에 선량한 이웃들이 울 일은 없을 테니까.
날씨의 변덕이 심하다. 환절기라서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절기(節氣)마다 뚜렷하던 날씨의 경계가 흐려져 계절이 계절답지가 않은 것이다.
날씨의 변덕이 심할 때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있다. 그들 때문에 몸의 불평이 대단하다. 해마다 무슨 연례행사처럼 우리는 감기의 고역을 치르곤 한다. 이 심술 사납고 무례하기 그지없는 불청객은 언제나 예고 없이 불쑥 몸을 방문해 당혹감을 안겨주곤 한다. 달포 동안 내내 나는 내 몸 속에 장기투숙 중인 그들(감기) 때문에 종일 투덜대는 몸을 달래고 있어야 했다.
면역이 생기지 않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감기와 사랑, 그리고 구두에 달라붙는 진흙 같은 미련과 집착 등이 아닐까. 그렇다. 생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의 흔적을 남기고 떠난 모진 사랑이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와 후끈 삶을 달궈놓듯이 감기 역시 면역이 없어 작년에 징글맞게 된통 앓은 감기를 올해 다시 앓아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지천명(知天命)을 코 앞에 두고 찾아온 바이러스. 벼르고 왔는지 가난한 집에 들른 식객처럼 좀체 나갈 줄을 모른다. 참으로 능글맞고 뻔뻔하기가 천하에 둘도 없는 놈이다. 바이러스도 진화를 한다. 요즘 것들은 성질이 지랄 같아서 성긴 이빨로 질긴 살가죽을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뼈마디를 노근노근 갉아대기도 한다.
그들은 내 몸에 장기투숙하면서 긴한 약속을 깨뜨리라고 부추긴다. 또 식욕을 빼앗아 사는 즐거움을 달아나게 한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의욕을 뿌리째 흔들어 놓기 일쑤다. 그들이 멀쩡한 나를 쓰러뜨리고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저희 뜻대로 다스리고 주무르는 동안 아,나는 아무도 누구를 미워할 수가 없고 시기할 수가 없고 또 그 누구도 간절히 그립지가 않다. 나아가 어지간한 것에도 분노할 줄 모르게 된다.
확실히 그들은 힘이 세다. 길길이 날뛰는 몸 속의 욕망을 일거에 제압해 꼼짝 못하게 만드는 그들은 과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 때문에 나는 올 겨울에 주요하고 긴한 약속 서너 건을 지킬 수가 없었다. 나를 신용불량자로 만든 그들에게 그 때마다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는 이내 꼬리를 내리고 그들에게 비위를 맞추느라 일부러 만든 비굴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들을 화내게 하면 결국 내가 손해인 것을 어쩌랴. 제발 부탁이니 이제 내 몸 속에서 떠나 달라고 아첨을 떨고 투정을 부리고 짐짓 목청을 높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를 내가 어찌 꺾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한 보름 몸 속을 떠돌며 나를 어지간히 진저리치게 만들던 그들이 마침내 떠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나는 혹 그들이 생각을 바꿀까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다. 하지만 감기와 몸살을 앓는 동안 그들로 인해 조그마한 깨달음일망정 한 소식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그들을 무뢰한으로만 여길 수 있으랴.
몸살에 치를 떠는 동안 나는 오직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했다. 어서 이 축축하고 두꺼운 이불을 훌훌 털고 일어나 그저 갓 지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내는 것만을 소원했던 것이다. 생활이 피우는 애증의 불꽃이 가물가물 시들어갈 때에야 그들은 활동을 멈추고 내 몸에 미련을 두지 않고 서둘러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는 동안 욕망이나 애증의 도가 넘치면 그들은 다시 잊지 않고 나를 찾아와 허황으로 가득찬 내 몸을 또 아프게 채찍으로 내려칠 것이다. 그들은 몸을 혹사시키면서 내게 잊을 수 없는 성찰(省察)의 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격에 맞지 않게 언행하는 사람에게 흔히들 개 돼지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한다. 개 돼지가 듣는다면 역정을 내며 웃을 일이다. 개 돼지는 먹는 욕망에만 충실할 뿐 인간처럼 도를 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최소한 개 돼지만큼만이라도 살았으면 한다. 그럴 때 과부하에 걸린 자신의 욕망 때문에 선량한 이웃들이 울 일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