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들은 골프를 쳐도 별명이나 기풍이 배어나온다.

' 탁트인 그린에서 하는 골프와 조용한 실내에서 두는 바둑은 연관이 없을 것 같지만 멘탈스포츠라는 점에선 똑같다.

당일 컨디션이나 승부호흡,마인드 컨트롤 여하에 따라 결과가 하늘과 땅처럼 커지는 게 바로 골프와 바둑이다.

이런 유사점 때문인지 최근 골프를 즐기는 바둑기사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기사가 권갑룡 7단과 서봉수 9단,양재호 9단,유창혁 9단,최철한 9단 등이다.

재미 있는 점은 이들 프로기사의 기풍과 골프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

세계 최고의 공격력으로 '일지매'란 별명을 지닌 유 9단(40)은 필드에서도 배짱 넘치는 과감한 샷을 구사한다.

큰 승부에 강한 그는 해저드가 앞에 있어도 망설이는 일이 없다.

이 때문에 잘되는 날은 80대 초반의 성적을 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안 될 때는 끝없이 추락하기도 한다.

소위 '모 아니면 도' 식이다.

평균 타수는 90대 초반.

'반상의 학구파' 양 9단(43)의 골프스타일은 안정적이고 차분한 기풍을 빼닮았다.

결코 무리하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성적도 기사들 중에서 꾸준한 편으로 8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을 유지한다.

동료기사들에게 골프를 곧잘 권유해 '바둑계의 골프전도사'로도 불리는 양 9단은 "욕심 내지 않고 즐기는 기분으로 할 때 골프나 바둑이나 모두 성적이 잘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끈끈하면서도 생명력 질긴 '잡초 바둑'을 구사하는 서 9단(53)은 필드에서도 짠소금 같은 실리를 추구한다.

일본유학파와 달리 독학으로 공부해 '된장''토종''순국산' 등으로도 불렸던 그는 골프도 이와 비슷하게 배웠다.

쇼트게임은 연습장에서 남들 어깨 너머로 익혔다.

제대로 기초를 닦지 않아 폼은 다소 어색하지만 '자신의 체형에 맞는 편한 스윙이 중요하다'는 게 서 9단의 스윙철학이다.

현재 80대 중반을 치고 있는 그는 내년에 '싱글'에 도전한다는 각오다.

권 7단(49)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둑계 최고수 골퍼.평균 타수도 78타 안팎을 기록하는 어엿한 '싱글'이다.

수많은 연구생을 키워낸 바둑사관학교(권갑용도장)의 '사감'답게 골프스타일도 정통파다.

젊었을 땐 260야드가 넘는 호쾌한 장타를 무기로 공격적인 플레이를 많이 펼쳤지만 나이가 들면서 쇼트게임 위주로 스타일을 바꿨다.

권 7단은 특히 내기를 좋아한다.

많든 적든 내기를 해야 골프 실력이 빨리 향상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부친이 한때 골프연습장을 운영해 또래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골프채를 잡은 최 9단(21)은 아직 100타 정도 치는 수준이지만 바둑처럼 골프도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를 지켜본 권 7단은 "여물려면 아직 멀었다"고 귀띔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