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고전문학 중 하나인 '오구라 백인일수(小倉百人一首)'는 교토 북서쪽에 있는 사가노라는 동네에서 시작한다.

사가노를 흐르는 호즈가 강은 거센 급류로 유명하지만 아라시야마 쪽으로 내려가면서 온화한 하천으로 바뀐다.

배로 이 호즈가 강을 타고 하류의 종착점인 아라시야마로 가다 보면 왼쪽에 작은 산이 보이는데 이 산이 백인일수가 탄생한 산장 '시구레덴(時雨殿)'이 있던 곳이다.

교토상공회의소는 창립 120주년을 맞아 일본 게임기회사 닌텐도(任天堂)에 문학과 게임을 접목한 신개념 박물관을 건립해 달라고 제의했다.

닌텐도는 '오구라 백인일수의 전당-시구레덴'이라는 체험형 엔터테인먼트 테마파크를 건립했다.

사단법인 오구라 백인일수 문화재단 대표인 야마구치 기미오씨는 지난 21일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던 교토 서쪽에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사회에 공헌한다는 차원에서 20억엔을 기부했다"고 설명했다.

야마구치 대표는 "오구라 백인일수의 전당은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 'DS 라이트'와 문학을 접목해 관람객이 쉽게 시조를 접할 수 있게 했다"며 "시조와 게임을 결합한 이런 테마파크는 일본을 통틀어 유일하다"고 말했다.

1200년대에 시작된 문학에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결합한 게임기,전통과 디지털의 만남인 셈이다.

'오구라 백인일수'는 후지와라노 다이메이란 사람이 펴낸 일본 고유의 정형시집으로 대표적 정형시인 100명의 작품을 담아 백인일수라 불린다.

네모난 판종이에 100인의 정형시를 썼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재의 카드와 같은 형태가 됐다.

백인일수 카드는 작자의 초상,이름과 시조 앞부문이 적혀 있는 읽기 위한 카드 100장과 시조의 뒷부분이 적힌 줍기 위한 카드 100장,총 200장으로 구성돼 있다.

누군가 읽기 위한 카드에 적혀 있는 시의 전반부를 읽으면 게임에 도전하는 사람이 후반에 이어지는 카드를 찾으면 된다.

일본인들은 백인일수 놀이를 통해 시인 100명의 정형시를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다.

대부분의 일본 초등학교에서 백인일수를 가르치며 방과 후 교외활동으로 활용하는 학교도 있다.

방송사 NHK에서는 1년에 한 번 백인일수의 달인을 가리는 '명인전'을 개최하는데 일본인의 시선이 온통 NHK로 쏠린다.

닌텐도는 이 백인일수를 LCD TV 100개와 게임기 'DS 라이트'를 이용해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테마파크 1층엔 100개의 LCD TV가 바닥에 깔려 있다.

TV 화면에 그림과 정형시의 영상이 나오면서 게임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TV 화면 위로 올라가 자신이 들고 있는 게임기에 나온 그림,정형시와 같은 화면을 찾아 다닌다.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카드의 화면 위에서 게임기 화면을 클릭하면 결과를 알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 시구레덴을 찾은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중얼중얼 시조를 읊으며 카드를 찾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녔다.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화면에는 자신이 무리 중 몇 등인지 결과가 나온다.

1등은 예닐곱살 소녀였다.

전시장 중앙 벽에는 백인일수의 정형시가 적혀 있는데 게임기를 들고 듣고 싶은 시 앞에 서면 적외선 센서가 작동해 닌텐도 DS 라이트가 시조를 읊어준다.

이 밖에도 여러 사람이 단체로 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장소와 화면을 만지면서 퀴즈를 푸는 공간도 있다.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하루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교토(일본)=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