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르네 마그리트展'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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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전'이 국내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함을 참기 어려웠다.
내년 2월부터 촬영에 들어가 7월께 개봉될 영화 '매혹'의 시나리오를 검토하다 마그리트와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매혹'이 인간의 성적 욕망을 초현실주의적으로 표현하는 멜로영화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선 '매혹'의 텍스트가 마그리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겨울의 운치가 넘치는 덕수궁 돌담길 옆,도심 속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예나 지금이나 잔잔한 '예향(藝香)'이 넘쳤다.
전시실에서 나를 처음 반긴 건 바로 예술 세계를 담은 마그리트의 고백이었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영화를 만드는 것도 사실 그의 말처럼 보이는 것을 스크린에 담는 작업이다.
작년 여름 '왕의 남자'를 촬영하기 전 화보로 봤던 마그리트의 감흥이 지금도 생생하다.
마그리트의 파격적인 예술세계가 진한 추억으로 가슴 한켠에 남아 있다.
전시실에서 마그리트의 걸작 '올마이어의 성'을 보는 순간 죽음과 현실,과학과 주술,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대상을 일관되게 변형하고 재창조한 기이한 상상력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할리우드의 이방인으로 불리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에도 마그리트의 상상력이 번져 있음을 느꼈다.
마그리트의 '피의 소리'라는 작품 역시 버튼이 제작을 맡았던 '크리스마스의 악몽''유령신부' 같은 영화들에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그리트의 친구 부인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이레느 혹은 금지된 책' 앞에 섰다.
마그리트의 에로틱한 회화 중 하나로 성적인 의미가 교묘히 '위장'되어 있는 작품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서 '에로틱한 정감'이 엿보인다.
마그리트는 미술을 철학과 언어의 또 다른 방식으로 봤다.
우리에게 친숙한 사물들의 '재미있는 결합'을 통해 일상의 논리와 상식을 유쾌하게 뒤집었다.
영화 역시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요소들을 동일한 화면에 결합시켜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불러 일으키는 작업이다.
관객 1230만명을 불러 모은 영화 '왕의 남자' 역시 '말이 안 되는' 설정을 통해 '말이 되게' 한 작품이다.
동양화를 전공했던 나는 20세기 전체를 관통한 마그리트의 미술 세계를 매우 흠모해왔다.
전시실은 마그리트의 생애에 따라 작품을 10개 섹션으로 배열해 그의 작품 세계 변화를 체계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시기별 대표작 50여점을 비롯 270여점이 동원된 이번 전시는 다시 보기 어려운 마그리트 작품전'으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