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A씨 부부는 2년 전부터 겨울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추운 날씨가 좋아서가 아니다.

겨울이 오면 3개월 일정으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외유를 떠나기 때문이다.

A씨 부부는 남편이 10년 전 받은 퇴직금으로 서울 인근 지역에 사 두었던 그린벨트 구역 내 땅이 택지지구에 수용되는 덕분에 뜻하지 않은 '거액'을 손에 쥐었다.

이때 받은 돈의 일부로 쿠알라룸푸르 지역에 있는 골프텔을 장만,매년 겨울이며 이곳에서 골프를 즐긴다.

두 차례 오가면서 교민을 비롯해 골프 동반자도 많이 생겼다.

물론 친구나 친지들도 초청한다.

집과 골프회원권을 갖고 있어 이 부부가 골프를 하고 숙식을 해결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하루 6만원 정도.한 달로 따지면 180만원가량으로 여유있는 상류생활을 누리는 셈이다.

A씨 부부처럼 최근 들어 1년 중 한 철만을 동남아 지역에서 보내는 이른바 '메뚜기 은퇴 이민'이 유행하고 있다.

주로 추운 겨울이 이주철이다.

메뚜기 세대의 대부분은 현지에 콘도와 같은 주거공간을 소유하고 있어 중산층보다는 부유층이 주류를 이루는 게 현실이다.

실제 서울 강남 지역에 위치한 한 고급 아파트의 경우 3가구당 1가구가 겨울을 동남아 지역에서 난다고 인근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귀띔했다.

정부가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자 임대 수익을 겨냥,동남아 현지에 주택이나 오피스텔을 구입하는 실속파도 늘고 있다.

가격도 방 2~3개짜리면 1억원 정도에 구입이 가능해 부담이 적은 편이다.

은퇴 이민 전문가 김기범씨는 "겨울에는 본인이 이용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한국인 어학연수생들에게 임대해 월 4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임대 수입으로 동남아에서 겨울을 나는 비용의 상당분을 충당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메뚜기 은퇴이민족'이 늘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 새 해외 여행이 급증한 게 첫 번째 이유라고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지적한다.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로 골프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현지 생활 여건에 매료돼 아예 그곳에서 겨울을 나기로 결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양수리 등 수도권 지역에 별장을 마련해 이용하던 사람들이 이를 처분하고 동남아 지역에 콘도 등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선뜻 은퇴 이민을 결정하기가 망설여지는 사람들도 '메뚜기 은퇴 이민'을 선호한다.

일단 가서 한번 살아보고 이민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부류다.

태국 은퇴 이민 전문 대행사 스타링크의 오세림 사장은 "과거에는 사람들이 은퇴 이민을 쉽게 결정했지만 요즘은 '그곳에서 10년 정도 살겠느냐'고 물어 보면 열에 아홉은 주저한다"며 "이런 경우에는 일단 겨울에 가서 한번 살아본 뒤 판단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일부 여행사들은 아예 '메뚜기 은퇴이민족'을 겨냥한 상품을 따로 내놓고 있다.

태국관광청과 태국 전문여행사 KTCC가 기획한 '타이 스테이'가 대표적이다.

'타이 스테이'는 태국의 널찍한 별장형 빌라나 콘도에서 장기간 휴가를 즐기거나,장기 거주를 희망하는 은퇴자들을 겨냥한 상품이다.

당연히 겨울철에 이용객이 급증한다고 한다.

오 사장은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앞으로 메뚜기 은퇴 이민은 더욱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