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우주인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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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들은 한때 이런 의혹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미국 정부가 과학기술 예산을 책정한 규모와 실제로 사용했다고 기관들이 보고한 액수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단순한 통계적 오류로 보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나 컸고, 그래서 정부가 외계인 등 공개하기 어려운 특수 임무 성격을 띤 연구에 비밀리에 돈을 투입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미국 과학기술의 출발점은 사실 임무지향적(mission-oriented)이었다. 과학기술 예산의 대종을 이루는 국방과 생명분야가 그러하다. 달 착륙을 비롯한 우주와 관련한 과학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기초과학 투자도 따지고 보면 국가의 임무지향적 투자 성격이 강하다. 임무지향적 과학기술의 경우 경제적 비용 개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부여된 임무를 해 내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런 임무지향적 과학기술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은 미국의 경제적 패권이 위협받으면서부터다. 특히 80년대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급부상, 쌓이는 미국의 재정적자 등은 과학기술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부터 미국의 과학기술은 확산지향적(diffusion-oriented)으로 돌아선다. 과학기술의 경제적, 상업적 파급효과를 높이자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는 이쪽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미국의 과학기술에는 여전히 임무지향적인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다.
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경제개발의 역사나 다름없다. 과학기술은 경제개발 관점에서만 그 유용성을 인정받아 왔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구개발 프로젝트 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도 경제적 비용과 이익이다. 이 전략은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필요했고 또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꿈을 심어주는 우주 프로젝트 같은 것에는 일찍 눈을 돌리지 못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남의 얘기였다.
한국인 우주인이 탄생한다. 이러저런 논란이 없지 않다. 2008년 4월 발사되는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에 타고가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8일간 머무르는 대가로 러시아에 지불하는 약 180억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국민들이 과학기술을 다시 생각한다면, 그리고 한국 과학이 본격적으로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된다면 얘기는 크게 달라질지 모른다. 만약 '나노에서 우주까지'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정책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기회들이 많아질 것이고, 당연히 산업의 진화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쩌면 정치·경제·사회적인 긍정적 영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모든 것을 개별 단위나 부문의 손익 관점에서만 계산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경제정책도 각 부문간 상호작용,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대로 따져보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과학이 우주로 확장되면 우리 사회가 개별 부문적 관점과 전체적 관점(wholic view)의 균형을 회복하는데도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런 효과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정부가 한국인 우주인 사업을 추진하는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주인 배출이 단순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청사진을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미국 과학기술의 출발점은 사실 임무지향적(mission-oriented)이었다. 과학기술 예산의 대종을 이루는 국방과 생명분야가 그러하다. 달 착륙을 비롯한 우주와 관련한 과학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기초과학 투자도 따지고 보면 국가의 임무지향적 투자 성격이 강하다. 임무지향적 과학기술의 경우 경제적 비용 개념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부여된 임무를 해 내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런 임무지향적 과학기술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은 미국의 경제적 패권이 위협받으면서부터다. 특히 80년대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급부상, 쌓이는 미국의 재정적자 등은 과학기술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부터 미국의 과학기술은 확산지향적(diffusion-oriented)으로 돌아선다. 과학기술의 경제적, 상업적 파급효과를 높이자는 의미다. 특히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는 이쪽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미국의 과학기술에는 여전히 임무지향적인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다.
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경제개발의 역사나 다름없다. 과학기술은 경제개발 관점에서만 그 유용성을 인정받아 왔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구개발 프로젝트 평가의 가장 중요한 잣대도 경제적 비용과 이익이다. 이 전략은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필요했고 또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꿈을 심어주는 우주 프로젝트 같은 것에는 일찍 눈을 돌리지 못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는 남의 얘기였다.
한국인 우주인이 탄생한다. 이러저런 논란이 없지 않다. 2008년 4월 발사되는 러시아 우주선 소유스호에 타고가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8일간 머무르는 대가로 러시아에 지불하는 약 180억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국민들이 과학기술을 다시 생각한다면, 그리고 한국 과학이 본격적으로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된다면 얘기는 크게 달라질지 모른다. 만약 '나노에서 우주까지'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정책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기회들이 많아질 것이고, 당연히 산업의 진화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쩌면 정치·경제·사회적인 긍정적 영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모든 것을 개별 단위나 부문의 손익 관점에서만 계산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경제정책도 각 부문간 상호작용,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대로 따져보지 않는 일이 허다하다. 과학이 우주로 확장되면 우리 사회가 개별 부문적 관점과 전체적 관점(wholic view)의 균형을 회복하는데도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런 효과는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정부가 한국인 우주인 사업을 추진하는 동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주인 배출이 단순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청사진을 정부가 국민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