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차도(Richard),광고방송(CF) 속 외국인 목소리는 다 제 거예요."

영어 전문 성우(voice-over artist)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차도'씨(38)는 재미동포 2세로 본명은 리처드 김(Richard Kim)이다.

요즘 CF에 등장하는 유창한 영어 발음의 90%가량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대한항공 CF 끝 부분에 나오는 "엑설런트 플라이트,코리안 에어",LG전자 CF의 "필즈 굿 싸이언" 등 지난 3년 동안 녹음한 CF만 400편에 육박할 정도다.

한국에 온 지 3년 반밖에 안 된 재미동포 2세가 어떻게 영어 성우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을까.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습니다. 2003년에 한국행을 결심했던 것도 장편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죠.그런데 저를 불러들였던 제작사가 망했어요. 졸지에 '백수'가 됐죠.그 때 우연히 아리랑TV에 있던 선배가 성우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이 길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처음엔 영어 강의 전문 성우로 활약했다.

"영어 테이프를 듣다 보면 'Listen and repeat'처럼 강의 막간에 나오는 멘트 있잖아요.아마 대부분이 제 목소리를 듣고 공부하셨을 거예요."

EBS 영어 강사로도 간간이 나오는 등 6개월 정도 이 일을 하던 차에 같은 재미동포 2세인 CF감독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하이네켄 광고였는데 미국인 성우가 갑자기 '펑크'를 냈다는 거예요.제가 '대타'로 들어갔죠." 이후 주변에서 '참신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당시 영어 전문 성우(남자)가 딱 두 명 있었는데 '식상하다''너무 굵고 느끼하다'는 평이 많았었나 봐요.외국인이어서 의사 소통도 힘들었겠죠."

미국에서 갈고 닦은 실력도 한몫했다.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영화학 석사 과정을 전공하면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많이 찍었어요.보통 편집자나 감독이 성우 역할까지 하는데 그게 모두 제 담당이었습니다."

우연과 함께 하게 된 영어 전문 성우로서의 자신의 모습에 이차도씨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몇 마디 안되지만 매번 녹음을 할 때마다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늘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점이 이 직업의 장점입니다."

무엇보다 '본업'인 영화감독의 길로 되돌아 갈 수 있을 만큼의 '실탄'을 충분히 확보한 게 가장 큰 기쁨이다.

"보통 외국인 성우들은 한 편당 20만원부터 시작해요.하지만 전 한 편을 찍더라도 15초,20초,30초,라디오 등 여러 버전으로 광고가 나오면 그 때마다 돈을 받아요.일종의 '특급 대우'인 셈이죠.대한항공 CF는 '엑설런트 플라이트,코리안 에어',이 한마디 녹음하고 지금까지 400만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매일 서너 편씩 녹음을 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상한가'다.

"하지만 내년엔 꼭 장편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계획입니다. 늦기 전에 꿈을 펼쳐야죠.2003년에 한국에 왔을 땐 매일 '왕뚜껑(라면)'신세였습니다. 지금이야 돈을 꽤 모았으니까 망하더라도 '김밥'은 충분히 먹을 수 있겠죠."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