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 도쿄 시내에서는 전국 농업협동조합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좀처럼 단체 행동을 하지 않는 일본 농민들은 가두 시위까지 벌이면서 호주와의 EPA(경제연대협정) 협상 개시 발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일본의 EPA 협상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9월 하순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는 협정 체결국을 현재 4개국에서 2년 안에 3배로 늘리는 내용의 'EPA 공정표'를 만들어 아시아 주요국을 대상으로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그동안 금기시해온 노동시장이나 농산물 시장 개방에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내년 초 농업 대국 호주와 인구 대국 인도와 경제연대협정 협상을 개시한다.

아시아 16개국으로 구성하는 '동아시아 EPA' 구상을 기본 틀로 하면서 양자간 협상을 병행해 아시아경제권 맹주를 노리는 중국과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공세로 전환

일본은 지난 9월 초 필리핀과 경제연대 협정을 체결했다.

2002년 싱가포르와 첫 체결 후 멕시코 말레이시아에 이어 네 번째다.

필리핀과는 간호사를 일본에 받아들이기로 합의,노동시장 빗장을 풀어 EPA 협상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아베 총리는 11,12월에 인도네시아와 인도의 국가 원수를 잇따라 국내로 초청해 공격적으로 협상을 벌였다.

인도네시아와는 농산물 수출입과 인도네시아 간호사 수용 등을 골자로 한 경제연대협정에 기본 합의,내년 상반기에 협정 발효 일정을 확정한다.

인도와도 내년 초 협상을 시작해 2년 안에 타결짓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내년 초부터 시작되는 호주와의 EPA협상은 농산물 수입이 최대 관건이어서 난관이 예상된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서석숭 상무관은 "아시아 각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에서 중국 한국 등에 뒤진 일본이 초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지적한 뒤 "한국 등과 FTA협상이 지지부진하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중국과 주도권 경쟁

일본이 인도 호주 등을 동아시아 EPA에 포함시키고 양자간 협상에 적극 나선 것은 대 중국 카드다.

아시아 경제권에서 영향력이 커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10억명으로 인구 대국인 인도와 천연자원과 농산물이 풍부한 호주를 끌어들여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일본에 앞서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으로 구성되는 동아시아 공동체 설립을 제안한 상태다.

한국은 일본보다 중국측 안에 동조하고 있다.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과 성공적으로 EPA 협상을 체결할지는 농산물 및 노동시장 개방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취임 3개월을 맞아 각종 악재에 시달리는 아베 총리가 국내 반발을 헤치고 성공적으로 협상을 추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무역협회의 김재숙 도쿄지부장은 "농민이나 정치권 반발이 커 일본 정부 계획대로 협상이 진전될지는 불투명 하다"며 "한국이나 중국이 아시아 각국과의 경제협력에서 일본보다 앞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


<용어풀이>

EPA(경제연대 협정,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특정 국가 간 상품 수출입의 장벽이 되는 관세 철폐를 중심으로 하는 FTA(자유무역협정)뿐만 아니라 투자 인적 교류 등 폭넓은 분야에서 경제 관계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

규제 철폐 및 완화,지식재산권 보호 등 각종 법률과 비즈니스 환경 정비 등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