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00조' 자력 돌파 아이디어뱅크

26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9층 회의실.주요 임원회의 참석자들은 강권석 은행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진땀을 흘렸다.

"내년 이후엔 특별이익이 줄면서 은행권 경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은행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생존을 가르는 한 해가 될 겁니다.

내년이야말로 우리 기업은행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평소 부드러운 이미지와 달리 이날 회의에서 그는 '격화''치열''생존' 등 강한 수사법을 구사하면서 임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강 행장은 늘 웃는 얼굴에 후덕한 옆집 아저씨같은 모습이지만,실제 강 행장과 일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만만찮은 추진력에 혀를 내두른다.

◆ 자력으로 일군 첫 '자산 100조' 돌파

강 행장의 추진력은 2004년 3월 취임 이후 기업은행의 괄목상대한 변화에 함축돼 있다.

취임 전 70조원대였던 총 자산은 지난 6월 이미 100조원을 넘어섰다.

2200억원대였던 당기 순이익은 무려 5배에 육박하는 1조원을 넘보고 있다.

주가 역시 7000원대에서 1만7000원대로 2배 넘게 올랐다.

자산 100조원 돌파의 경우 다른 금융회사 인수나 합병 없이 자력으로 일군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외형성장과 함께 내실도 다졌다.

무수익 여신비율은 2.2%(2004년 2월 말 기준)에서 지난 9월 말에는 0.66%로 오히려 1.54%포인트나 개선돼 업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 기발한 착상의 '아이디어 뱅크'

은행업계에서 강 행장은 아이디어뱅크로 통한다.

'우산론' '기업주치의론' '기업인 천하지대본' 등은 잘 알려진 강 행장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우산론은 '비올 때 우산을 뺏지 않는 게 기업은행의 원칙이 될 것'이라는 데서 연유했고,기업주치의론은 기업금융에서 은행의 역할을 '사후조치'에서 '사전예방'으로 개념을 혁신한 유명한 사례다.

'기업인 천하지대본'은 현대사회에서 기업이 사회 발전의 핵심 주체라는 강 행장의 철학이 반영된 표어다.

이런 철학은 올해로 3대째에 이른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 헌정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우량 중소기업인 11명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과 우수 기능인을 '중소기업 명장'으로 칭해 모두 35명을 선정하는 사업으로 더욱 구체화됐다.

중소기업 지원 상품을 개발하는 데도 그의 아이디어는 반짝였다.

국내 금융권 최초로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협력'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네트워크론 개발이 대표적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98개 대기업과 368개 중견기업,1개 공공기관과 협약을 맺어 중소기업 5000여곳에 모두 2조2532억원을 지원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런 성과에 따라 2003년 말 국민은행에 이어 2위에 머물렀던 기업은행의 중기 대출 점유비중은 강 행장 체제에 접어든 2004년 6월말 1위 자리를 탈환했다.

2005년에는 은행권 전체의 중기대출 순증액 가운데 55%를 넘는 6조5807억원을 혼자 담당했고,올해도 9월 말까지 은행권 중 가장 많은 8조7957억원을 지원했다.

시장점유율도 꾸준히 늘어 올해 9월 말까지 19.4%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기업은행의 새비전 '2-20-200'

강 행장은 올초 '1-10-100' 비전을 제시했다.

순이익 1조원,시가총액 10조원,총자산 10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이었다.

이 중 순이익과 총자산 약속을 지킨 강 행장은 이제 '2-20-200' 비전을 기업은행의 과제로 던졌다.

5년 뒤 50주년이 되는 2011년에는 모든 실적을 2배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 특유의 강점인 중소기업금융 시장의 리딩뱅크로서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도,저원가성 조달시장인 가계금융에서도 조화로운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게 강 행장의 신념이다.

강 행장이 평소 임직원에게 "중기금융 이상으로 가계금융을 잘할 수 있는 토대를 갖고 있는 게 기업은행"이라며 가계금융을 통한 기업은행의 균형성장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약 력 >

◆ 1950년 서울 출생 ◆ 62년 서울 동성고 졸업 ◆ 73년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 73년 행시 14회 합격 ◆ 88년 미 밴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 92년 대통령 비서실(경제) ◆ 94년 재경원 보험제도과장 ◆ 97년 뉴욕영사관 재정경제관 ◆ 2000년 금융감독위원회 기획행정실장 겸 대변인 ◆ 2001년 금감위 증선위원 ◆ 2002년 금융감독원 부원장 ◆ 2004년 기업은행장

수상 소감

"금융 名醫로서 고객성공 뒷받침"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제16회 다산금융상'에서 큰 상을 받게 돼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는 모두 저희 은행을 찾아주시는 고객과 각계 각층에서 기업은행에 보내주신 관심과 애정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공직에 몸을 담아 CEO로서 일천한 저에게 이러한 귀한 상을 주신 것은 더욱 더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로 생각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희 기업은행은 설립 이후 현재까지 중소기업과 동고동락하며 중소기업과 동반성장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중소기업 금융시장에서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효율적인 자금지원과 경영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금융권 최초로 시행한 '네트워크론'은 중소기업지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대한민국 힘 통장,고구려지킴이 통장,여성시대 통장 등 개인금융을 위한 각종 공익성 상품을 개발해 사회적인 공감대 조성에도 기여했습니다.

또 조직 내부의 끊임없는 경영혁신을 이끌어내 역대 최고의 경영성과를 거두었고 '선진적인 IT인프라 구축'과 '우체국 공동망 이용 제휴''한국투자금융과의 전략적 제휴' 등 사업영역의 다양화 및 선진화를 통한 우량은행으로서의 입지도 다졌습니다.

선진노사문화를 정착시키고 인재 육성과 성과중심의 평가문화를 정착시켜 인사의 투명성 신뢰성을 높여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기은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은행장을 단장으로 하는 기업은행 자원봉사단을 조직하는 등 사회공헌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금융 전담기관으로서 일손이 부족한 소기업을 찾아 봉사활동하는 '1직원 1소기업 자원봉사'는 기업의 성장을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의 건강을 지키는 기업주치의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 중소기업과 은행은 동반 성장을 이루고 나아가 국가경제도 함께 발전할 것입니다.

CEO는 한 조직을 대표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사회와 경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해 기업은행 임직원 모두는 '금융의 명의(名醫)'로 고객이 성공을 향해 날 수 있는 힘차고 강한 날개가 돼 성원에 더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강 행장의 말에 비친 기업은행

로마군단 … 洋醫ㆍ漢醫 … 우산論까지

강 행장은 '아이디어 뱅크'답게 적절한 수사로 기업은행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행장의 말속에 기업은행의 전략이 담겨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강 행장이 취임하면서 선언한 "비오는 날 우산을 뺏지 않겠다"는 '우산론'은 금융권 전체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으며 은행권에 아포리즘(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격언)의 유행을 낳았다.

또 "비 오는 것을 미리 알려 비를 피하게 하겠다"는 '일기예보론'과 "은행은 기업의 종합병원이고 은행원은 기업의 주치의"라는 '기업주치의론'은 중소기업과 동고동락하는 기업은행 행장으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강 행장은 종종 '전투 용어'로 임직원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전투 의지를 부추기기도 했다.

지난 2월 국내외 임직원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에서 열린 '비상 IBK 2006 전진대회'에서 올해를 '은행 영토 확장의 해'로 규정하고 "로마군단처럼 전국 각지에서 은행대전 승리를 향해 총진군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날 임직원들은 '기은 전사'로,각 은행의 영업전략을 '작전 수행'으로,기업은행만의 독특한 영업전략을 '크루즈 미사일'로 표현했다.

이어 지점장들에게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선물했다.

고객이 있는 곳을 다른 누구보다 빨리 찾아가라는 주문이었다.

그는 "이 내비게이션은 기업은행의 작전지도"라며 "고객을 자주,신속하게,정확하게 찾아가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양의(洋醫)·한의(漢醫)론'도 그의 수사법을 대변하는 표현이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양의와 한의의 기술과 지식을 다 갖춰 양의의 기술로 환자의 환부를 치료하고 한의의 기술로 환자의 체질을 개선해주는 그야말로 기업의 명의(名醫)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2005년 1월 기업은행 본점 강당에서 열린 시무식에선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화두를 던지며 "국책은행이란 온실속에서 편하게 영업해온 기존의 타성을 깨고 배수진의 자세로 영업에 임해 달라"고 강조했다.

파부침주란 밥지을 솥을 깨뜨리고 타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의미다.

중국 진(秦)나라 정벌에 나선 항우가 장하(暲河)를 건넜을 때 별안간 타고 왔던 배와 솥을 모조리 강물속에 버리게 하고 병사들에게 3일간의 식량만 주면서 결사항쟁의 각오를 다지게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