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80년대 가슴 촉촉한 러브스토리 '오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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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희(염정아)의 사랑은 어쩌면 동정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독재정권에 쫓기는,그래서 가여운 운동권 청년 현우(지진희)를 숨겨주고,재워주고,몸까지 줬으니까.
그리고 찾아온 아픈 이별.두 남녀의 슬픈 운명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촉촉이 젖는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1980년대의 애틋한 정서를 탁월하게 그린 멜로영화.사랑의 감정조차 사치일 것만 같은 엄혹한 시절의 빛나는 러브스토리다.
거대한 군부독재 체제 아래 무기력한 개인의 신념,나홀로 행복하면 어쩐지 미안하게 느껴지던 시대의 초상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임 감독의 현대사 3부작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1990년대 말 욕망과 가족해체를 다룬 '바람난 가족'(2003년)과 1970년대 말 독재정권의 말로에 현미경을 들이댔던 '그때 그 사람들'(2005년)에는 허무와 냉소주의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에게는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현우는 냉철하고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동료들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한윤희는 자신을 희생하며 인간적인 예의를 지키는 여인이다.
황석영 원작 소설에 비해 역할이 강화된 한윤희는 작품 주제를 대변해 준다.
그녀는 여기서 불모의 시대에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구호에 이끌리는 주변 인물들이 무기력하거나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과 뚜렷이 대비돼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 임 감독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애틋한 시대 정서를 포착하는 솜씨도 뛰어나다.
17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현우가 책장을 넘기다가,혹은 방문을 열다가 마주치는 회상 장면들은 아주 섬세하게 처리돼 있다.
긴 시간의 불안감과 대비돼 과거의 짧은 행복이 강력한 흡입력을 갖는다.
치열한 시위 장면도 이 영화가 평범한 멜로로 전락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줬다.
1986년 건국대 사태 장면은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현장감이 넘친다.
21세기와 전혀 다른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도 미래에 거는 기대 또한 놓치지 않았다.
미니스커트에 이어폰을 착용한 딸은 부모세대와 전혀 소통할 것 같지 않지만 어느새 부모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다.
내년 1월4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독재정권에 쫓기는,그래서 가여운 운동권 청년 현우(지진희)를 숨겨주고,재워주고,몸까지 줬으니까.
그리고 찾아온 아픈 이별.두 남녀의 슬픈 운명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촉촉이 젖는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1980년대의 애틋한 정서를 탁월하게 그린 멜로영화.사랑의 감정조차 사치일 것만 같은 엄혹한 시절의 빛나는 러브스토리다.
거대한 군부독재 체제 아래 무기력한 개인의 신념,나홀로 행복하면 어쩐지 미안하게 느껴지던 시대의 초상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임 감독의 현대사 3부작 중 가장 감동적인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1990년대 말 욕망과 가족해체를 다룬 '바람난 가족'(2003년)과 1970년대 말 독재정권의 말로에 현미경을 들이댔던 '그때 그 사람들'(2005년)에는 허무와 냉소주의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에게는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현우는 냉철하고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동료들에 대한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이다.
한윤희는 자신을 희생하며 인간적인 예의를 지키는 여인이다.
황석영 원작 소설에 비해 역할이 강화된 한윤희는 작품 주제를 대변해 준다.
그녀는 여기서 불모의 시대에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구호에 이끌리는 주변 인물들이 무기력하거나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과 뚜렷이 대비돼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 임 감독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애틋한 시대 정서를 포착하는 솜씨도 뛰어나다.
17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현우가 책장을 넘기다가,혹은 방문을 열다가 마주치는 회상 장면들은 아주 섬세하게 처리돼 있다.
긴 시간의 불안감과 대비돼 과거의 짧은 행복이 강력한 흡입력을 갖는다.
치열한 시위 장면도 이 영화가 평범한 멜로로 전락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줬다.
1986년 건국대 사태 장면은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현장감이 넘친다.
21세기와 전혀 다른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도 미래에 거는 기대 또한 놓치지 않았다.
미니스커트에 이어폰을 착용한 딸은 부모세대와 전혀 소통할 것 같지 않지만 어느새 부모 세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다.
내년 1월4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