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철에 기업체 사장이 자리를 지킬 것이냐 여부를 알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이듬해 골프 약속이라는 얘기가 있다.

선선히 약속하면 연임을 내락받았다는 증거라는 것.하지만 이 기준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고 곧장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직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상당 기간 동안 골프 회원권을 가질 수 있고 사무실과 비서,기사 딸린 차량도 대부분 유지할 수 있다.

비록 일정 기간이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퇴임하는 CEO나 임원들에게 각종 지원과 배려를 해주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소임을 다하고 떠나는 중역들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갖춤으로써 임직원들의 충성도와 일체감을 유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구나 고위 임원들은 회사가 보호해야 할 기밀을 많이 알고 있는 이들이 아닌가.


○2~3년 예우가 기본

국내에서 퇴직 임원에 대한 '예우'가 가장 좋은 기업은 삼성이다.

사장에서 물러날 경우 '보좌역' 또는 '고문'이라는 직책이 부여되며 직전 연봉의 70∼80%가 지급된다.

사장 시절의 자동차와 비서도 지원된다.

예우 기간은 통상 3년이지만 기여도에 따라 5년이 부여되는 경우도 있다.

또 부사장으로 퇴임하면 '보좌역' 또는 '고문' 직책으로 2년 정도 예우를 받을 수 있다.

LG그룹의 퇴직 임원들은 서초동에 마련된 LG클럽 사무실에 적을 두게 된다.

사장급으로 퇴직하면 고문이라는 직함과 함께 2년간 별도의 사무실과 비서,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다.

부사장이나 상무로 퇴직할 경우 공동 사무실에서 공동 비서를 두게 된다.

다만 자동차는 지급되지 않는다.

물론 급여도 섭섭지 않게 지급된다.

SK그룹은 기여도에 따라 상무급은 1년,전무급은 2년,부사장급 이상은 3년 정도 급여를 지원한다.

부사장 이상의 경우 1년 동안 기존 연봉을 제공한 뒤 나머지 2년은 기본 급여를 지급한다.

단 사장급은 퇴임 후 전직 최고경영자(CEO) 모임에 가입하고 사무실을 이용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사장으로 퇴임하면 상담역,부사장 이하로 퇴임하면 자문역으로 2년씩 예우한다.

상담역과 자문역은 각각 상근과 비상근으로 다시 구분된다.

상근은 급여와 함께 사무실 비서 차량 등이 지원되고,비상근은 사무실 차량 비서 등이 지원되지 않는다.


○항공사들은 공짜 여행까지

대한항공,금호아시아나 등 항공사들은 차량이나 금전적 지원 등은 다른 기업들과 비슷하지만 항공권 할인 혜택이 주어져 '행복한' 케이스다.

은퇴 후 부부 여행을 계획할 때 항공권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국내선의 경우에는 부부가 50%의 할인 항공권을 무제한(아시아나는 배우자의 경우 18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

국제선 할인율은 양 항공사가 모두 90%다.

하지만 모든 대기업들이 이런 지원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그룹은 퇴임 사장에게 사무실과 자동차 등 어떤 지원도 하지 않는다.

고문이라는 직함도 주지 않는다.

또 다른 대기업은 사장급만 예우를 해주고 부사장 이하에 대해선 전혀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이런 기업을 다니다가 '야인(野人)'이 되면 섭섭함이 클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퇴임 후에 안면을 몰수하는 기업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세는 '퇴임 후 예우'가 확대되는 쪽"이라며 "기업들도 쓸데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유능한 경영자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조일훈·유창재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