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대기업을 빼면 10년 동안 나아진 게 뭐가 있느냐.정부는 여전히 시대 흐름을 못 쫓아가고,노사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인재는 해외로 빠지고,기업들은 국내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국가경쟁력 저하에 따른 문제가 곧 불거질까 우려된다."(김인호 중소기업연구원장)

"외환 유동성 위기는 더 이상 없겠지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오히려 심화됐다.

10년 전보다 더 골병이 든 느낌이다."(강만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외환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년 전 외환위기가 홍수에 댐이 무너지는 형국이었다면,앞으로의 경제위기는 따가운 햇살에 서서히 말라죽는 형태가 될 것이다."(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

국가 초유의 사태였던 환란(換亂)을 온 몸으로 맞았던 당시 고위 관료들은 "외환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10년간 한국 경제의 체질이 바뀌면서 외환부족 사태에선 벗어났지만,다른 형태의 위협 요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외환위기가 불거지던 1997년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김인호 원장은 "환란은 외환 부족과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맞물리면서 터진 것"이라며 "이제 외환보유고가 2340억달러에 달하는 만큼 유동성 위기는 없어졌지만 구조적인 문제점은 오히려 커졌다"고 진단했다.

외환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강만수 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불거진 새로운 위협요소로 지나치게 늘어난 주택담보대출과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중국 기업들의 시장잠식 등을 꼽았다.

창업이 위축되고 청년 실업이 늘면서 성장동력이 약화되는 점도 우려했다.

그는 "외환위기를 1년반 만에 극복했다는건 정치적인 수사일 뿐 일반 서민들의 삶은 오히려 10년 전보다 고단해졌다"고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외채 협상을 주도한 뒤 1999년 산업자원부 장관에 취임한 정덕구 의원은 환란에 대해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하는 '모닝콜'이었다"며 "외환위기를 통해 강한 기업만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 원리가 경제 전반에 뿌리내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 의원은 "10년 전 위기가 외화 유동성 부족에서 시작해 경제위기로 옮아갔다면 앞으로의 위기는 경제 펀더멘털 약화가 외환 부족을 부르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