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 시인 >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 아침에 뜨는 해가 날마다 뜨는 해와 다를 것이 있을까마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한결 더 크고 밝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이루고 싶은 소망을 빌고 스스로의 다짐도 새롭게 갖기 위해서일 것이다.

지난 한 해의 얼룩지고 고달팠던 것,다투고 미워했던 그 어두운 그림자는 모두 지우고 반갑고 기뻤던 것,사랑하고 아름다웠던 것,보람되고 자랑스러웠던 것은 다시 담아 더 풍성하게 가꾸는 기약을 하는 새해 아침이다. 이 날은 모두 덕담(德談)을 주고받는다. 우리는 집안 어른이나 스승들에게서 덕담을 듣고 자랐다. 오늘 이 사회의 지도자들도 덕담이 씨앗이 되어 꿈을 이루고 남들이 오르지 못하는 자리에 올랐으리라.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요즈음의 우리 사회는 덕담을 만나기 어렵고 핏발 선 말들이 서로를 할퀴고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든가,미운 사람에게 떡 한 덩이를 더 준다고 한 우리네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올해는 정해(丁亥)년 돼지해라고 해서 돼지꿈을 꿨느냐는 인사부터 해야겠고,집집마다 황금돼지가 꿀꿀거리고 문을 밀고 들어와 재물과 복을 가득 채워줬으면 좋겠고,자나 깨나 나라살림을 걱정하는데 수출도 잘되고 기름이라도 펑펑 쏟아져서 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고,북한이 핵실험을 거두고 한반도의 영구평화에 선뜻 나서 주었으면 좋겠고,나아가 통일의 빗장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고….

어찌 이루 다 바랄 수 있으랴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자기 맡은 일을 해낸다면 그것이 곧 꿈을 성취하는 일이요 더불어 나라가 부강하게 되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마음과 마음이 모아지면 힘도 생기고 뜻하는 일도 풀리는 것이 순리인데 어제를 돌아보면 겨울을 녹이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들을 수가 없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고 했다. 어디서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졌는지는 몰라도 정치권은 물론 사회지도층,그리고 원로들까지 나서서 서로 편을 가르고 상대를 깎아내리고 헐뜯기에 바쁘다. 남과 북이 갈라진 것도 원통한데 동과 서,좌와 우,보수와 진보,무슨 권(圈) 무슨 권 하고 조각을 내고 있다. 화해니 용서니 하는 말도 쓰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국민들을 찢고 발기면서 지도층은 무엇이고 원로는 또 누구인가. 오랜 국정경험이나 경륜이 깊은 국가원로는 정파를 초월해서 싸움을 말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덕담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조선조 태종의 신임을 한 몸으로 받던 이조판서 황희(黃喜)는 태종이 세자 양녕을 폐하고 셋째 아들 충녕을 세자에 책봉할 것을 의논했을 때 목숨을 걸고 반대하다가 겨우 목숨은 살게 됐지만 재산과 양반의 신분을 박탈당해 남원으로 유배를 갔었다.

충녕이 세종임금이 되었을 때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극력 반대한 황희를 복권시켜 고속승진 27년간 중용했는데 영의정만 18년 간이었다. 황희가 영의정에서 물러날 때의 나이가 87세였으니 세종과 황희가 엮어낸 한 왕조사는 세계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왜 우리는 이런 선인들의 덕치(德治)를 이어 받들지 못하는 것인가.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했던 각료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리는 일도 안타깝지만 국가경영이라는 큰 틀에서 조금씩 양보하고 공생의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을 당리당략(黨利黨略)만 내세워 나라의 이익이나 국민의 생활은 돌보지 않고 물고 뜯기만 한다면 국민이 설 자리는 어디란 말인가!

대통령을 뽑는 해라서 올해도 어지간히 시끄러울 모양이다.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덕담은 없이 얼마나 독 묻은 화살이 난무할 것인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이 돼지해는 덕담하는 한 해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