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 덕 < 생활경제부 차장 >

지난 연말 처음 찾았던 베트남은 기자에게 '오토바이의 나라'로 남아 있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차도를 꽉 메운 수백대의 오토바이가 '부르릉' 소리를 내며 밀물처럼 앞으로 빠져나간다.

베트남의 경제중심도시 호찌민이나 수도 하노이의 새벽은 그렇게 열린다.

인구 8000만명의 베트남에 1300여만대의 오토바이가 굴러다니고 있다고 한다.

2010년엔 2000만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추산.

'속도'는 국가와 사회,개인의 발전상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다.

다른 곳으로의 이동 속도,의사결정의 속도,의견의 전달 속도,아닌 것을 버리는 속도,잘되는 것에 올라타는 가속도 등을 통해서다.

그런 면에서 오토바이는 고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베트남 경제를 잘 설명해 준다.

어찌 보면 오토바이가 베트남을 '부(富)의 세계'로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앞서 빨리 달려 나가지 않으면 배움의 기회도,일자리도 얻지 못한다.

베트남의 청춘 남녀는 오토바이 위에서 첫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베트남의 속도가 베트남을 아시아의 경제 모범생으로 탈바꿈시켰다.

1986년 경제 성장을 위해 '도이모이'(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지 20년 만이다.

'도이모이'는 의사결정과 전달 속도(공감대) 면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그 결과 가속도를 즐기게 됐다.

2000년 이후 베트남은 연간 7.5% 이상 고속성장세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해외자본 유치도 봇물을 이룬다.

특히 지난해 11월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베트남은 아시아 경제중심국가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열광한다.

이 나라는 근세 들어 인도차이나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막대한 부존자원에 눈독을 들인 프랑스 미국 중국 등 외세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옥토가 '탄피의 숲'으로 둔갑하는 고난을 겪어왔다.

상전벽해(桑田碧海)된 요즘의 변화상에 열광하는 배경이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도 그렇게 성장했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란 걸 세워 6·25전쟁의 폐허 위에 세계 12위 경제대국을 건설했다.

한동안 고속성장의 속도감도 즐겼다.

지난해엔 수출 3000억달러 고지에 올랐다.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베트남인들이 오늘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시큰둥하다.

통일 베트남 건설의 주역인 호찌민은 이런 말을 남겼다.

"10년 안에 수확을 얻고 싶으면 나무를 심어라…100년 뒤 수확을 얻으려면 사람을 키워라.어려운 게 뭐 있겠는가.

인내심만 있다면." 5년마다 정치세력이 이합집산하고,그래서 백년대계는커녕 십년대계도 짜지 못하는 한국에 던지는 경구처럼 들린다.

새해 초 '담배를 끊겠다''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을 막아주는 아이디어제품이 덩달아 쏟아질 정도로 결심한 걸 실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의 해다.

출마 후보들에겐 좀더 타이트한 새해 결심을 주문하고 싶다.

백년을 내다보는 '작심5년'이 어렵다면 아예 출사표를 던지지 말라고.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