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에서 북한통일정책을 전공하는 석사과정 김익환씨.한 때 한총련에 몸 담았던 소위 '주사파'다.

그러나 지금은 2004년에 발족된 북한인권청년학생연대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친북적인 학생운동과 거리집회 등으로 학교로부터 제적을 당하기도 했지만 군대를 다녀온 후 우연히 탈북자들을 만나면서 김씨는 변화를 겪었다.

그는 "일부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멋모르고 북한을 동경하고 친북활동을 했던 사실을 후회하고 있다"며 "지금은 북한정권과 인권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끄는 북한인권청년학생연대에는 연세대 이화여대 전북대 등 여러 대학 내 북한인권 관련 동아리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씨는 "2~3년 전만 해도 북한의 인권 얘기를 꺼내면 '보수 세력'이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대학 내에서도 북한체제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런 비난은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통일관 확연하게 바뀐다

서울대에 다니는 최은정씨(독어교육1년)는 "과거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주제로 토론회를 하자는 대자보를 본 적이 있지만 (거기에) 관심을 두는 친구는 주변에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통일에 대해서도 최씨는 "우리 또래들은 통일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요즘 대학생들에겐 젊은이 특유의 극단적인 이상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국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사와 중앙리서치의 설문 조사에서도 이런 측면은 여실히 드러난다.

부작용이 있더라도 빨리 통일이 돼야 한다는 당위성에 찬성하는 쪽은 고작 21.8%. 늦더라도 국가 경제의 후퇴나 부작용 없이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의견과 현재의 분단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78.2%에 달했다.

남북통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9.5%가 긍정적인 견해를 나타내긴 했지만 30.4%는 분단 체제가 고착돼 아예 통일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통일 시기는 무려 59.4%가 20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에 정상 회담이 이뤄진 이후 지속적으로 지지를 받아 온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도 대학생들은 한층 보수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우리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35.9%는 지속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햇볕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35.3%)를 약간 앞섰다.

미군 철수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예상보다 많은 28.8%가 가능성이 높다고 답변했다.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52)는 "현재 대학생들은 고교 시절부터 햇볕 정책을 보고 배운 세대"라며 "이전 어느 세대보다 북한의 실상이나 정보를 많이 접해서인지 통일을 막연하게 감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통일 자체가 어렵다는 것을 현실로 인식하고 있고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와 통일 비용 등을 따져 통일이 자신에게 어떤 손익이 미칠지 계산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또 "젊은 남학생들의 경우 군대 문제가 걸려 있어 전쟁 가능성에는 민감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분단 상황이 고착화되면서 분단 체제를 받아들이려는 수동적이고 보수화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젊다고 무조건 진보 아니다

정치적 이념 성향에 대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국내 10개 상위권 대학 학생들 중 56.9%는 스스로를 중도파(중도진보 중도보수)라고 답변했다.

보수(16.1%)나 진보(27%)라고 말한 비율을 크게 앞선다.

하지만 인근 국가에 대한 선호도나 국가 간 외교에서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통적 우방국인 미국 대신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 중인 중국에 대해 급격하게 쏠리는 현상이다.

10년 후 우리나라의 발전에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로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2.8%가 중국을 꼽았다.

미국은 18.6%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 2위다.

1년 전과 비교해 본 국가별 감정 변화에서도 중국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이 커졌다는 답변이 미국의 두 배에 달했다.

한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의 이호재 교수는 "아직 국가관이나 자아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의 친중(親中) 쏠림 현상이 향후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