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元巖 < 홍익대 교수·경제학 >

정해년이 밝았다. 올해는 60년마다 온다는 '붉은돼지해'라고 하고,믿거나 말거나 600년마다 온다는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돼지는 전래적으로 부(富)와 다산(多産)의 상징이므로 올해는 저마다 부자가 되기를 빌어본다. 하지만 왠지 분위기가 썰렁하다. 올해야말로 "새해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문자 메시지가 쇄도(殺到)할 만도 한데 아직까지 이런 메시지를 받아보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올해는 '돼지해'가 아니라 '곰의 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곰은 경기 둔화나 약세장(弱勢場)을 상징한다. 경제예측기관들은 대부분 올해 경제성장률이 작년보다 낮아져서 4∼4.5%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으며,북핵과 미국 경제의 경착륙 등 위험요인으로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곰들이 활개 치며 다닐 것 같다.

작년에는 고유가,부동산 불안,원화 급등의 세 마리 곰들이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작년 9월 이후 유가가 안정되고,'버블 세븐'의 붕괴도 없었다.

원화의 가파른 절상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정부의 5% 성장목표를 어렵게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를 모면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파도를 넘으면 더 큰 파도가 기다리고 있듯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위험이 닥치게 된다.

첫째,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이다. 작년 중 미국 경제는 3% 넘게 성장했으며 많은 예측기관들은 올해도 2%대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연착륙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예측기관들은 대부분 2001년의 미국 경제침체를 예측하지 못했으므로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둘째,원화 환율이 달러당 800원대에 진입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을 주도(主導)하고 있는 수출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가파른 원화절상에 따른 환(換)차익을 노리거나 환위험을 관리할 목적으로 단기 외채가 급증하게 되면서 금융 불안의 요인이 된다.

셋째,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폭등한 주택가격이 향후 경제운용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외부 충격 시 부동산 시장이 곰 장세로 전환하면서 위기를 증폭시킨다. 외부 충격에 의한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패닉으로 치달을 수 있다.

넷째,대선 정국에 진입하면서 갈등 요인이 한꺼번에 분출하고,레임덕 현상에 따른 리더십 부재(不在)로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경제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 특히 3월로 예정된 한·미 FTA 타결은 우리 사회 갈등 분출의 도화선이 될 것이다. 한·미 FTA 체결로 피해를 보는 계층과 이득을 보는 계층 간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 한다면 한·미 FTA는 안하니만도 못하게 된다.

다섯째,제2차 핵실험 등 북핵 관련 악재는 우리 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입히고 해외자본의 이탈로 이어질 경우 전반적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 현재 정부는 원화절상을 억제하기 위해 해외부동산투자 확대 등 자본유출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북핵 위험 증대로 해외자본이 유출되고 해외차입이 어려워질 경우 우리나라는 또다시 국제수지(國際收支)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상의 대내외적 위험에 처해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송년사에서 재경부 직원들이 '호복기사(胡服騎射)'의 자세로 일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과연 경제 공무원들이 종래와는 달리 '호복'을 입고 말 위에서 활을 쏘는 최강의 기병단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대선(大選)이 있던 1997년과 2002년에 공무원들은 결코 '호복기사'가 아니었다. 1997년에는 환란을 겪었고,2002년에는 신용카드 대란을 겪었다. 종래보다 몇 배나 자세하게 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하고,치밀하게 리스크를 관리하며,선제적으로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는 '무적군단'의 출현으로 '돼지꿈'을 꾸게 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