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만 없으면 환율이 아무리 떨어져도 6~7%대의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12월29일 기자단 송년 오찬간담회)

"노사 화합을 통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합리적인 노사 간 대화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키자."(정몽구 회장 신년사)

지난 2일 신년하례식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똘똘 뭉쳐 위기를 돌파하자"고 했던 현대자동차그룹 경영진의 당부가 하루 만에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올해 사상 최대의 경영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이는 현대차가 새해 벽두부터 노조의 거센 도전에 직면,올 한 해도 험로를 예고했다.

성과급 규모에 반발하고 있는 노조가 특근과 잔업거부에 이어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며 발목을 잡고 나섰기 때문이다.

○"환율보다 노조가 더 무섭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원화 강세 △고유가 △내수경기 침체 △선·후발 업체들의 공세 강화 등으로 인해 안팎으로 큰 어려움을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가 정작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같은 대내외적 경영 악재가 아닌 노사 분규다.

지난해 장기 파업으로 '사상 최악의 해'를 보낸 악몽 탓에 노조의 파업을 올해 경영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고 있다.

파업만 없으면 다른 경영위기쯤은 얼마든지 극복해낼 수 있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33일간(부분파업 포함)이나 파업을 벌여 모두 11만5000여대의 생산 차질과 1조6000억원의 매출 손실을 회사측에 입혔다.

사상 최대 규모다.

긴급조정권 발동까지 검토됐던 2003년(10만4895대,1조3106억원 손실)보다 피해가 컸다.

○목표 미달에 웬 성과급?

현대차는 노조가 당초 합의한 약속을 위반하고 150%의 성과급을 달라고 하자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8월 임금협상에서 사업 계획서상의 생산대수를 100% 초과하면 150%의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지난해 161만8268대를 생산,목표(164만7000대)의 98.3%만 달성했다.

장기 파업을 감안,연초 세운 목표(176만7000)를 12만대나 축소까지 했지만 이마저 채우지 못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가 올 들어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만 10차례나 참가하면서 생산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노사 합의를 깨고 150%의 성과급을 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업계 관계자도 "매년 노조에 퍼주기식 관행을 지속해 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현대차가 지난해 임금협상 과정에서 성과급 지급 조건을 바꾼 것은 작은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이 같은 원칙을 지키지 못할 경우 현대차 노사 관계는 다시 한참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지난해 최악의 경영위기 속에서도 임금 7만665원(기본급 대비 5.1%)을 인상하고 호봉제 도입에 따른 인상분 7335원과 협상타결 일시금 200만원까지 챙겼다.

노조원들이 자기 몫 챙기기에는 확실히 나서면서 생산성 향상에는 관심이 없다는 비난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동안 파업으로 인한 누적 생산차질 대수와 차질금액이 각각 100만대와 10조원을 웃돌고 있지만 노조는 1988년부터 작년까지 18년간 임금을 평균 12.6% 인상했다.

현대차 근로자들이 차량 1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2004년 기준)은 33.1시간인 데 비해 도요타는 19.5시간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올해 경영 타개책 물거품 되나

현대차는 환율 파고를 넘기 위해 최근 강도 높은 원가절감 노력에 들어갔다.

자동차 설계단계를 비롯한 연구개발에서부터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모든 과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같이 힘겨운 노력도 노조의 협조 없이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해마다 파업 손실 만회와 '노조 달래기'에 자금과 시간을 허비한다면 어떠한 원가절감 노력도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차그룹은 △중국 제2공장 건설 △체코 공장 착공 △인도 제2공장 건설 △터키 공장 증설 △일관제철소 건설 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야 할 처지다.

업계 관계자는 "암울한 경영환경을 타개하려면 생산성 향상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매년 강성 노조와의 씨름에 비용과 시간을 낭비할 경우 몇 년 안에 글로벌시장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