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柱亨 < LG경제연구원장 >

최근 우리 경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두 가지 용어는 경기순환 주기의 단축과 저성장이다. 새해의 경제 전망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회복세를 보였던 우리 경제는 그 이후 다시 활기를 잃고 있다. 다행히 수출은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 부문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해 경제,특히 상반기에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세계경제의 둔화와 원화 절상(切上)이다. 지난해 세계경제는 당초 국제기관들이 우려했던 것보다 견실한 성장을 유지했다. 특히 국제유가의 안정과 각국의 물가상승 압력 완화 등은 선진국의 경기 연착륙(軟着陸)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보여줬던 세계경제의 호황은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주택경기 하락은 소비에도 영향을 줘 미국 경제성장률을 끌어 내릴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일본,그리고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의 개도국들도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장세가 지난해만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의 둔화와 함께 우리 수출을 위협하는 요인은 역시 원화 강세다. 원화가 절상되는 데에는 달러 약세라는 글로벌한 현상과 우리나라 고유의 문제가 맞물려 있다. 특히 우리 경제에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다. 유로화를 제외하고 어느 나라 통화보다도 원화의 절상 속도가 빨라 우리의 수출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자연히 많은 수출 기업들이 부실화되고 있고 IT,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수출채산성까지 급속하게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새해는 우리 수출 기업들이 어느 정도의 환율 수준까지 버틸 수 있는지 테스트 받는 시련의 기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수부문은 건설투자가 소폭의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소비와 설비투자는 지난해보다 부진할 것으로 보인다. 건설투자의 경우 하반기부터는 공공건설 사업의 착공 등이 이어지면서 미약하나마 회복세로 돌아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의 경우 고용이 크게 늘기 어렵고 가계의 구매력 개선도 미흡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이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성장동력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어서 새해 성장률은 지난해 5% 내외 수준에서 4%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세계경제가 하반기에 회복세를 보인다면 우리 경제의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로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는 위험 요인들도 많다. 우선 6자회담이 열려도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성은 지속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유가(油價)도 이란 핵문제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등 공급 불안 요인이 상존하고 있다. 여기에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이전투구까지 가세해 정책일관성이 결여되고 정책 추진력이 약화된다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는 더욱 늦춰질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이 자칫 내수를 급격히 위축시키지 않도록 유의하고 환율 안정,특히 엔화 등 수출 경쟁국 통화대비 원화 가치 안정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큰 사회적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는 한·미FTA 협상과 비준도 잘 마무리돼야 한다. 그리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과학기술 인프라 확충이나 서비스산업 육성,교육 환경 개선 등 중장기 정책이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함은 물론이다. 올해 있을 중요한 정치일정이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정권 말기에 자주 나타나는 이익집단들이나 일부 강성노조들의 과격한 행동이 산업활동에 지나친 누를 끼치지 않도록 잘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모적인 이념 대립이 아니라 실용적인 정책대안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를 위해선 정책혼선을 막고 경제살리기에 전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