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바보는 감동을 준다.

모자란 듯한 행동으로 실컷 비웃음을 산 뒤 끝자락에는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우리가 바보 주인공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슬그머니 일깨워주면서.

'말아톤'과 '맨발의 기봉이' 주인공들이 그랬다.

그들은 각박한 세상살이에서도 순수를 잃지 않았다.

허인무 감독의 신작 '허브'의 상은(강혜정)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배종옥)를 추모하는 상은의 대사는 관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너무 예쁘게 생긴 엄마라 고마웠고,다 알면서 맨날 속아준 것도 많이 고마웠어.그리고 무엇보다 똑똑한 영란이나 잘생긴 승원이가 아니라 (부족한) 나의 엄마로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 모자란 자식이다.

이런 메시지는 명쾌하게 전달된다.

'허브'는 스무살의 정신지체아 상은과 어머니,이웃 오빠 간의 아기자기한 삶을 에쁘게 그려냈다.

이전의 바보 주인공들은 시종 낮은 지능 상태에 머물러 있었지만 상은은 조금씩 성장한다.

말하자면 바보의 성장드라마다.

그녀는 사랑과 이별을 거치며 한 뼘쯤 자랐다.

아픈 어머니를 간호할 줄 알게 됐고,사랑의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리고 장기를 살려 취직도 했다.

정신지체아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으며 일반인과 연애 또한 가능한 것이다.

'지체'는 조금 늦은 것일 뿐이며 '장애'는 조금 더 힘이 드는 것일 뿐이다.

사랑의 증상에 관한 상은의 직관력은 더 뛰어날지도 모른다.

"오빠랑 있으면 머리도 가슴도 다 멈추려고 해요" "허기가 져.여기(가슴)가 텅빈 것 같아.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가 않아."

상은역 강혜정의 능란한 연기력은 재미를 배가시킨다.

그녀는 '웰컴투 동막골'에 이어 또 하나의 바보캐릭터를 선보였다.

치열교정과 성형수술을 마친 강혜정의 모습이 예전과 달라진 것은 아쉽지만.

이야기의 감동은 생각보다 약하다.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삶을 변주해 내지 못한 시나리오상의 결함 때문이다.

장면 간 연결고리를 보강하고,인물들에게 보다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었더라면 휠씬 흥미로웠을 영화다.

11일 개봉,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