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바로보기] 시장 왜곡시키는 '뇌물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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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현정의 의지와 곧은 공인정신으로 무장한 암행어사 박문수가 부패한 관리를 찾아내고 징벌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던 기억이 있지는 않으신지.경제학도 박문수처럼 부패를 싫어한다.
그러나 윤리나 도덕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다.
첫째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남몰래,그리고 위험을 무릅쓰며 투입한 시간과 정성을 다른 생산적인 데 사용한다면,경제 전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더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과 정성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낭비에 불과하다.
둘째 부패한 사회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경제주체가 그 일을 담당한다는 보장이 없고 이는 결국 경제 전체의 자원의 낭비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도로를 가장 효율적으로 건설하는 회사를 제치고 뇌물을 공여한 회사가 시공을 담당하게 된다면,뇌물을 공여한 회사는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서야 도로를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적절한 거래에 따른 자원의 낭비는 다른 사람들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도로 건설의 경우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비효율적인 시공사에 지급해야 하고,이것은 결국 부패 부담이 납세자들에게 귀착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일부 의료기관과 속칭 '나일롱 환자'와의 구질구질한 공생관계는 의료보험의 누수를 재촉하고,이것은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의 부담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제학이 부패를 싫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부패한 사회는 경제주체들로하여금 그에 적응해 사고하고 행동할 유인을 제공하고,이로 인해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이나 시장의 왜곡이 증가한다는 것일 것이다.
뇌물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제 주체들이 알게 된다면,이후 그 경제에서는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만큼의 뇌물을 공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된다.
부패한 관리에 의해 보호받는 사업자는 기술개발보다는 관리의 비호를 유지하는 데 더욱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능력은 있으나 부패에 가담하지 않는 경제주체는 경쟁에서 도태되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선생님의 편애를 받는 학생보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면 공부할 맛이 나겠는가?
한때는 뇌물이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해서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는데 도움을 준다거나,언제 어디에 어느 정도의 뇌물을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예측이 가능한 사회는 부패했지만 효율적인 사회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부패가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성장을 저해한다는 쪽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뇌물의 효과가 확실한 사회는 그 효과가 불확실한 사회보다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부패하지 않은 사회보다는 효율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부패수준 또는 청렴도는 어느 정도일까? 문제는 부패 수준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패가 본질적으로 음침하고 은밀한 거래여서,여간해서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다행히도 최근의 연구는 서로 다른 국제기관들이 발표하는 국가 간 상대적 부패수준이 대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불행하게도 우리의 청렴도는 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렴위원회의 지속적 활동과 국민의식의 신장 등으로 최근 우리의 청렴도가 개선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박문수의 전설적인 일화는 역설적으로 그가 부패와 정실로 얼룩진 시대를 살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한 두명의 청백리만으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돌이키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박문수가 탐관오리를 잡으려고 노력할수록 부패하는 방법도 더욱 정교해지고 비밀스러워지는 것도 문제다.
우리 시대 부패와의 전쟁에 청렴위원회나 감사원 등의 정부기관 뿐 아니고 범국민적인 참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문중 < KDI 선임연구원 >
그러나 윤리나 도덕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이유에서다.
첫째 뇌물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남몰래,그리고 위험을 무릅쓰며 투입한 시간과 정성을 다른 생산적인 데 사용한다면,경제 전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더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과 정성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낭비에 불과하다.
둘째 부패한 사회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경제주체가 그 일을 담당한다는 보장이 없고 이는 결국 경제 전체의 자원의 낭비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도로를 가장 효율적으로 건설하는 회사를 제치고 뇌물을 공여한 회사가 시공을 담당하게 된다면,뇌물을 공여한 회사는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서야 도로를 건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적절한 거래에 따른 자원의 낭비는 다른 사람들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도로 건설의 경우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걷어 비효율적인 시공사에 지급해야 하고,이것은 결국 부패 부담이 납세자들에게 귀착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일부 의료기관과 속칭 '나일롱 환자'와의 구질구질한 공생관계는 의료보험의 누수를 재촉하고,이것은 고스란히 다른 사람들의 부담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제학이 부패를 싫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부패한 사회는 경제주체들로하여금 그에 적응해 사고하고 행동할 유인을 제공하고,이로 인해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이나 시장의 왜곡이 증가한다는 것일 것이다.
뇌물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경제 주체들이 알게 된다면,이후 그 경제에서는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만큼의 뇌물을 공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된다.
부패한 관리에 의해 보호받는 사업자는 기술개발보다는 관리의 비호를 유지하는 데 더욱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능력은 있으나 부패에 가담하지 않는 경제주체는 경쟁에서 도태되고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선생님의 편애를 받는 학생보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면 공부할 맛이 나겠는가?
한때는 뇌물이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해서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는데 도움을 준다거나,언제 어디에 어느 정도의 뇌물을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예측이 가능한 사회는 부패했지만 효율적인 사회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부패가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성장을 저해한다는 쪽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뇌물의 효과가 확실한 사회는 그 효과가 불확실한 사회보다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부패하지 않은 사회보다는 효율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부패수준 또는 청렴도는 어느 정도일까? 문제는 부패 수준을 누구나 동의할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패가 본질적으로 음침하고 은밀한 거래여서,여간해서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다행히도 최근의 연구는 서로 다른 국제기관들이 발표하는 국가 간 상대적 부패수준이 대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불행하게도 우리의 청렴도는 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렴위원회의 지속적 활동과 국민의식의 신장 등으로 최근 우리의 청렴도가 개선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박문수의 전설적인 일화는 역설적으로 그가 부패와 정실로 얼룩진 시대를 살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한 두명의 청백리만으로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돌이키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박문수가 탐관오리를 잡으려고 노력할수록 부패하는 방법도 더욱 정교해지고 비밀스러워지는 것도 문제다.
우리 시대 부패와의 전쟁에 청렴위원회나 감사원 등의 정부기관 뿐 아니고 범국민적인 참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문중 < KDI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