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 부방 회장(69)은 여느 해와는 달리 새해를 고향인 경북 경주시 양동민속마을에서 맞았다.

양동민속마을은 500여년의 역사가 녹아 있는 전통 가옥과 문화재,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양반촌.이 회장은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마다 어린 시절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곳을 찾아 새로운 각오를 다지곤 한다.

그는 지난해 12월3일 국제로타리 차차기 회장으로 확정됐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대 민간 봉사단체의 수장에 오르게 된 것.이 회장은 차차기 회장 확정 이후 각종 행사 참석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 왔다.

지난달 14일에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국제로타리 세계본부로 가 본부 임직원들과 상견례한 후 업무보고를 받는 것으로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전속으로 배정된 미국인 비서실장으로부터 정기적인 보고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국내외 로타리인들을 비롯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어떤 마음가짐과 모습으로 회장직을 수행할 것인가를 차분히 그리기 위해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고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월 초하룻날 어릴적 뛰놀던 모교(양동초등학교)의 교정을 거닐다 항상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겸손이야말로 봉사단체 수장으로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은 5일 서울 삼성동 부방테크론 본사에서 이 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국제로타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 세계 로타리 클럽의 연합체로 203개국에 3만2000여 클럽과 123만 회원을 두고 있는 세계 최대 민간 자원봉사 단체입니다.

회원은 대부분 기업인이나 전문직 종사자입니다.

국제로타리는 '초아(超我)의 봉사'를 기치로 내걸고 후진국의 위생이나 보건 환경 개선 활동과 빈곤 문맹 소아마비 퇴치 활동 등을 벌입니다.

이를 위해 로타리인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로타리재단에서 매년 1억달러 이상의 기금을 집행합니다."

-'차차기 회장'이라는 말도 생소합니다.

"통상 차차기 회장으로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2008~2009년 국제로타리 회장'입니다.

회장 임기는 2008년 7월부터 1년간입니다.

오는 6월까지는 차차기 회장,7월부터 내년 6월까지는 차기 회장으로 활동하지요.

차기 회장부터는 시카고 국제본부 근처에 있는 공관에 거주하며 업무를 봅니다.

본부에는 회장과 차기 회장,차차기 회장의 사무실이 각각 있습니다.

차차기 회장은 차기 회장과 함께 현직 회장과 주요 사업에 대해 논의하면서 일을 익히고 회장이 물리적으로 가기 힘든 행사에 참석합니다.

이처럼 독특한 '3인 회장' 체제를 운영하는 것은 '준비된 회장'으로서 보통 3년 이상 맡는 로타리 사업을 일관성 있고 연속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한 것이지요.

실제 임기는 2년7개월여 정도인 셈입니다."

-회장의 주요 역할은.

"회장은 국제로타리를 대표하는 '제1 대변인'이며 최고 임원으로서 국제대회와 이사회를 주재합니다.

임기 동안 전 세계를 순방하며 교황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과 만나 지구촌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 방안을 협의하는 '민간 외교관'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로타리 연수회에 참가해 로타리인들의 봉사 의욕을 고취하는 것도 주요 업무 중 하나입니다.

잦은 순방으로 회장 임기시 공관에 머무는 시간은 3분의 1도 안 됩니다.

국제로타리 주요 행사나 회의에는 회장 모국의 국가와 국기를 사용하고 로타리인들은 회장이 정한 문구와 모토가 새겨진 배지를 답니다."

-한국인 최초 회장 배출의 의미는.

"국제로타리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지요.

올해는 한국 로타리클럽이 탄생한 지 80주년입니다. 우리나라는 회원수(5만1000여명)로는 미국 일본 인도에 이어 4위,재정 기여도에서는 미국 일본에 이어 3위입니다.

그동안 세계 회장 배출을 염원하던 한국 로타리인들의 소망을 이루게 돼 더욱 보람을 느낍니다.

더욱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시기에 회장으로 활동해 국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 공동으로 노력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국제로타리는 민간 자원봉사 단체로는 유일하게 유엔본부에 사무소를 두고 있을 만큼 유엔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싶은 분야는.

"소아마비 박멸과 기아·빈곤 퇴치 사업입니다.

지난해 1월 인도 비하주에 자원봉사 활동을 갔을 때 아직도 소아마비로 죽어가는 아이들과 고통받는 부모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국제로타리는 1985년부터 지금까지 6억달러를 들여 전 세계 소아 20억여명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했습니다.

과거 하루 1000명씩 소아마비 환자가 발병하던 것이 이제는 1년에 2000명 정도로 줄었습니다.

임기 동안 몹쓸 병인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싶습니다."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쌓고 있다는 평가인데.

"학연(서울고·연세대)과 지연 등을 통해 지인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무하고나 친분 관계를 맺지는 않습니다.

특히 마당발로 불리거나 '누구 누구를 안다'며 인맥을 과시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성실하지 못한 것 같아 싫어합니다.

제게 따끔한 충고를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성품과 능력을 지닌 사람들과는 깊이 사귀는 편이지요."

-정계 진출 권유도 많이 받았다는 얘기던데요.

"1979년 12·12 사태 이후 여·야당에서 모두 정계 진출을 권유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계로 들어오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간곡하게 사양했습니다.

부산방직을 창업,경영하던 선친이 로타리 활동을 통해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치에는 뛰어들지 말라'는 선친의 당부도 있었고 로타리에서 연륜을 쌓아가면서 봉사의 외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로타리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남을 위해 단돈 몇 푼이라도 흔쾌히 쓸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입니다.

회장 퇴임 후에도 여생을 로타리인으로 살면서 로타리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글=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

[ 약력 ]

△1938년 경북 경주 출생
△1961년 연세대 졸업(1960년 연세춘추 편집국장)
△1968년 부산방직 입사
△1971년 서울한강로타리클럽 입회
△1987~1993년 서울은행 이사(비상임)
△1994년~현재 부방 회장
△1994~2005년 주한 이탈리아 명예영사
△1995~1996년 로타리 3650지구 총재
△1995~1999년 연세대 사회과학대 동문회장
△2002~2003년 서울고 총동창회장
△2003년~현재 국제로타리 재단 관리위원
△2005년~현재 외교부 무임소 대사(국제친선 담당)